[특파원 리포트] 美 법무장관이 부러운 이유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2021. 9.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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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집권 세력의 시각을 빌린다면 미 법무부는 ‘적폐 청산’의 전초 기지로 너무도 좋은 환경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트럼프 자녀·측근 탈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트럼프 정권의 민주당 의원 및 기자 사찰 논란 등 전(前) 정권을 겨눈 이슈들이 줄줄이 몰려 있다.

메릭 B. 갈랜드(Merrick B. Garland) 법무장관이 9일 워싱턴 DC 법무부에서 낙태법으로 텍사스를 고소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한국 정권 방식대로라면 이렇게 진행됐을 것이다. 미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역할을 겸한다. 연방 검찰의 정권 수사를 걱정할 일도, 소위 ‘검찰 개혁’ 작업을 벌일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검찰이 조 바이든 대통령 차남의 탈세 의혹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법무장관 지휘 아래 각종 조사위가 앞다퉈 정적들의 치부를 까발리고, 친여 매체들은 ‘유혈 수사극’을 연중무휴 생중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론 이와 거리가 멀다. 지난 3월 취임한 메릭 갈런드 장관은 언론 인터뷰는 물론 브리핑에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주인공’이 된 뉴스를 찾기가 힘들다. 법무부가 최근 한 달간 법무장관 명의로 내놓은 보도 자료는 5건이다. 같은 기간 국무부는 77건, 국토안보부는 13건이었다.

갈런드 장관은 취임 이후 측근들에게 “(트럼프라는) 괴물에 곧장 달려들면 그 괴물에 더 끈질긴 생명력을 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과오를 들춰내는 데 집중할 경우, 우리도 그들처럼 ‘당파적 전사’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트럼프 정부를 겨냥한 각종 조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관련 부서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법무장관이 정치의 최전선에 서서 수사 지휘권을 수시로 발동하고, 정권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 수사팀을 도중에 ‘공중분해’시키는 한국 방식과 상반된 모습이다.

갈런드 장관은 지난 2월 인사청문회에서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변호사가 아닌 국민의 변호사”라며 “기소와 수사를 정파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막겠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원을 위한 규칙과 공화당원을 위한 규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같은 달 박범계 법무장관은 “나는 장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며 정파성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갈런드의 ‘소신’에 대해 미국 민주당 일각에선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갈런드 장관은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그에 대한 기획 기사에서 “그는 각종 ‘반(反)트럼프 조치’를 기대하고 있는 민주당에 ‘카타르시스’를 안기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그는 트럼프 행정부 때 뒤틀렸던 법무부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 더 큰 승리 아닌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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