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제도의 위기, 캘리포니아 해법은?

한경환 2021. 9. 1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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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쇄신
민주주의 쇄신
네이선 가델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지음
이정화 옮김
북스힐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꼬인 걸까. 인류 최대의 발명품으로 불리는 민주주의가 고장 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민주주의 쇄신』은 더는 만능일 수 없는 민주적 제도의 어두운 그늘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동 저자인 네이선 가델스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 집중적으로 분석한 모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정치시스템, 민주주의제도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주들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보다 훨씬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캘리포니아주를 토대로 미국 연방, 나아가 전 세계 민주주의 제도의 쇄신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 불능은 종종 거버넌스 위기로 번진다. 지난해 11월 마스크를 쓴 채 투표 순서를 기다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권자들. [AFP=연합뉴스]
4000만 인구의 캘리포니아주는 경제 규모가 2조5000억 달러나 되며 ‘황금의 주(Golden State)’라 불린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창의성과 혁신, 거대한 부를 창출하는 세계의 심장이기도 하지만 정치문화와 공공 영역은 심하게 병들어 갔다. 21세기 들어 캘리포니아주는 헤어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 주 재정은 빚더미에 올랐고, 학교 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공공비용은 고등교육보다 교도소 운영에 더 많이 지출한다. 당파적 교착상태에서 주의회는 예산처리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퇴보했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런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적인 가치와 개인주의적이며 자유분방한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인 거버넌스를 운용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를 고민했다.

2010년 10월 결성된 초당파적 그룹 ‘캘리포니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위원회’는 저자들도 그 뜻을 같이하는 산실이었다. 위원들은 1년 동안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에서 월 1회 회의를 개최하고 캘리포니아를 새롭게 할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들은 거버넌스의 위기를 서구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적 제도의 부패로 나타난 증상으로 파악한다. 기존 시스템은 내부 기득권층의 조직화한 특권에 사로잡혀 세계화로 인해 나타난 불만과 급속한 기술 변화에 따른 붕괴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봤다. 다른 한편으로 기존 질서에 반발하는 격앙된 포퓰리즘 당원들은 부패한 제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작정으로 공화국을 영속시킬 수 있는 제도적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을 공격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제도를 버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기존 제도를 쇄신하는 접근법을 제안한다.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현재의 위기에 처한 대의정치에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중심추 역할을 하는 무당파적 ‘심의기관’을 국민의 자치권으로 부활시키는 방안이다. 공정한 중재기관의 개입을 통한 비정치화 없이 민주화는 없다고 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 심의기관에 시민발안제 심사 권한과 자체적으로 심사숙고한 발의안을 서명이나 수집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중에게 제안하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 쇄신방안과 함께 새로운 사회계약 그리고 세계의 상호연결성 증대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제안을 했다.

한국의 정치상황은 캘리포니아주나 미국과는 많이 다르지만 중우정치, 선동정치에 취약한 민주주의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선 비슷한 면도 없지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이 될 수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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