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17] 너는 누구인가
몇 해 전, 그린란드 여성의 모유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유해 폐기물로 여겨지고 있다는 충격적 뉴스를 봤다. 전 세계 독성 물질의 종착지가 북극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북극곰이 머물 수 있는 빙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몸도 변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북극곰의 비극이 인간에게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다는 것에 놀랐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나 호주의 대형 산불이나 중국의 대홍수처럼 지구를 잠식하는 재앙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때 나비 효과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몇 달 전, 인터뷰 전문 작가와 함께 자서전 작업을 했던 한 지인이 “혼자 자서전을 썼다면 절대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사적 실패나 성공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 접혔던 페이지가 펼쳐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며칠 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가 내 표정을 따라 하는 걸 봤다. 아기는 내가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찡그렸다. 인간의 뇌 중 매우 빠르게 발달하는 것 중 하나가 거울 뉴런이다. 이때 타인은 거울이 되어 아기 얼굴을 비춘다. 아기는 웃는 엄마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찡그린 이모를 통해 불안을 느낀다. 거울 뉴런은 인간의 관계 지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회사원 시절, 팀장이 곧잘 하는 말 중에 “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제발 남들이 보고 싶은 걸 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 나는 이 말을 독창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독창성마저 ‘공동의 시선’을 통해 일어난다고 믿는다. 누군가와 싸울 때, 설득할 때 나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는 건 ‘나는 누구인가’와 함께 ‘너는 누구인가’를 질문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이 추방이었다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그러므로 종종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는 타인이 내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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