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크림반도 이어 벨라루스도 흡수하나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9. 10. 21: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통합 위한 28개 실행 과제 합의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이 연합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28개 로드맵을 확정했다./EPA 연합뉴스

소련 해체 30주년에 소련연방에서 독립했던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한 몸이 되려는 ‘역사의 반동(反動)’이 벌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분야 통합을 중심으로 연합국가를 만들기 위한 28개 실행 과제를 확정해 발표했다. 이로써 양국은 하나의 연합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식적인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과 루카셴코가 합의한 28개 통합 로드맵은 무역·노동·통화·세금·에너지 등 주로 경제 분야에 치중돼 있다. 푸틴은 “양국 공통의 금융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단일한 산업·농업 정책을 가동해 경제적 공동체를 먼저 추진한다”며 “정치적 통합은 여건을 봐서 추후 검토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또 10일부터 일주일간 ‘자파드 2021’이라는 양국 공동 군사 훈련을 한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양국이 단일 국방 체계를 갖추는 방안도 점진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국의 통합은 꾸준히 거론돼왔다. 루카셴코가 푸틴에게 의존해 권력을 유지해왔고, 벨라루스에는 친러 성향의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연합국가를 지향한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논의가 무르익지는 않았다. 양국 지도자끼리 구체적인 통합 방안을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구로는 러시아가 1억4400만명이고, 벨라루스가 950만명이다. 따라서 겉으로는 통합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가 ‘동생 국가’ 벨라루스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21세기 들어 전례가 드문 국가 통합 추진은 푸틴과 루카셴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했다. 푸틴은 소련 시절 영화를 재건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그는 특히 러시아와 유럽의 사이에 있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로 빼앗아 병합했다. 이번에는 추가적인 서진(西進)을 위해 벨라루스를 합쳐 러시아 영토를 넓히려는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연합국가를 만들기 위한 28개 실행 과제를 발표하며 통합 추진 방침을 선언했다. 루카셴코는 27년째, 푸틴은 21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AFP 연합뉴스

루카셴코 입장에서는 벨라루스 내부에서 권력을 보장받고 훗날 안전하게 퇴임하기 위해 푸틴의 힘을 빌려야 할 처지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며 1994년부터 집권 중인 루카셴코에 대한 퇴진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작년 8월 대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이후 그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직면해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코너에 몰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루카셴코가 권력 유지를 위해 그동안 뒷배가 되어준 푸틴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 것이 통합 논의를 앞당긴 요인”이라고 했다. 이번 루카셴코의 러시아 방문은 작년 대선 이후 다섯 번째다. 그는 소련 시절 집단농장 관리자였다. 오래전부터 소련식 통제가 몸에 배어 있는 인물이다.

푸틴은 루카셴코의 장기 집권을 돕기 위해 원유·천연가스를 싸게 공급했다. 겨울 스포츠 마니아인 두 사람은 함께 스키를 타거나 아이스하키를 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벨라루스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푸틴은 루카셴코를 엄호하기 위해 러시아 경찰을 투입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벨라루스에는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서방 국가들의 생산 공장이 제법 많다. 연합국가를 만들면 러시아가 이런 공장들을 흡수하거나, 내쫓아서 서방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과 루카셴코가 만들려는 통합 국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푸틴은 21년째, 루카셴코는 27년째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반대파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하는 철권 통치자라는 게 공통점이다. 특히 루카셴코는 정당정치를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다. 벨라루스 하원의 전체 110석 중 89석을 루카셴코의 통제하에 있는 무소속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루카셴코는 “코로나는 사우나를 하고 보드카를 마시면 낫는다”고 말할 정도로 막무가내식 통치를 해왔다.

양국 통합 추진에 대해 벨라루스 국민들은 친러 성향인 이들과 루카셴코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이 찬반 대립을 벌여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벨라루스에는 친러 성향이고 루카셴코를 지지하며 소련 시절에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통합 추진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루카셴코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은 국가 통합에 따른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거부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서방은 반루카셴코 세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벨라루스는 정당 정치가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 독특한 정치 제도 탓에 야권 정치인들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적다. 대체로 NGO 같은 시민단체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