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생존자 "지금도 콘크리트 먼지 냄새 맡으면 목덜미가 당긴다"
[경향신문]
희생자 유가족 “어제처럼 생생”
미국인 절반 “국내 테러 더 위험”
이슬람교도 “그 후로 난 이방인”
빛으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재현
잭 그랜드콜라스에게 2001년 9월11일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으로 오기로 했던 배우자 로렌이 돌아오지 못했다. TV 화면에선 여객기 두 대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부딪치는 끔찍한 영상이 반복해서 나왔다. 임신 3개월이었던 로렌은 자동응답 메시지에 “비행기에 약간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랜드콜라스는 9일(현지시간) 미 공영라디오방송(NPR) 인터뷰에서 “매년 로렌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어땠을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로렌의 음성이 담긴 자동응답기 재생 버튼을 누른 그는 “아이는 올해 열아홉 살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1일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납치한 민간 여객기 4대가 뉴욕 한복판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 등에 떨어지면서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에 마지막 남은 미군을 철수하며 ‘테러와의 전쟁’ 종료를 알린 가운데, 미국인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NPR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 맞은편 브루클린브리지 공원에 낡은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했다. 20년 전 갑자기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못다 한 말을 음성메시지로 남겨달라고 했다. 남편을 잃은 한 아내는 “어제처럼 생생한데 20년이 지났다는 걸 믿을 수 없네.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당신을 쏙 빼닮았어. 보고 싶어”라고 말한 뒤 흐느꼈다.
생존자들도 여전히 20년 전 그날의 고통을 생생히 떠올렸다. 9·11 당시 세계무역센터 59층에서 일하고 있던 생존자 돈 바소는 ABC방송 인터뷰에서 “지금도 제트 연료나 콘크리트 먼지를 보거나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목 뒷덜미가 당긴다”고 말했다.
퓨리서치센터는 당시 15세 이상이었던 미국인의 93%가 테러 당일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는 여론조사를 지난달 발표했다. 당시 8세였던 라이언 하프가 기억하는 장면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TV를 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던 아버지였다.
9·11 사태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사인 메리엔 펜돌라는 플로리다 지역신문 인터뷰에서 “9·11 이후 다시는 내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USA투데이 설문조사에서 국내 테러가 더 위험하다는 응답은 56%로 해외 테러가 더 위험하다는 38%의 응답을 앞질렀다.
9·11 사태는 미국을 하나로 묶기도, 분열시키기도 했다. 하프는 “9·11 이후 잠시뿐이었지만, 모두가 하나의 대가족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증오도 커졌다.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서 ‘이슬람교도가 다른 종교 신자들보다 폭력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응답자는 2002년 25%에서 지난달 50%로 19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민주당 지지자 중 32%, 공화당 지지자 중 72%가 같은 대답을 했다.
하버드대 최초의 이슬람 여성 목사인 사미아 오마르는 하버드 가제트 인터뷰에서 “9·11 이후 모든 주변 환경이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9·11에 대한 기억이 없는 하버드 대학생 아난 하페스(22)는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유치원 때부터 끊임없이 놀림받았다”면서 “나는 6살 때부터 중동의 지정학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종교와 알카에다, 탈레반, 이슬람국가(ISIS)의 차이점에 대해 가르쳐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9·11 테러 20주기 추모식을 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이날 맨해튼의 9·11기념관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초청해 베르디의 레퀴엠을 연주한다. 맨해튼 도심 곳곳에서는 이날 밤 조명으로 무너진 쌍둥이 건물의 이미지가 재현될 예정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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