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히딩크의 은퇴
[경향신문]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 축구 대표팀이 경주 베이스캠프에서 훈련할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내 머릿속에 수천가지의 창의적인 전술이 들어 있다. 마음껏 질문해 끄집어내라”고 말했다. 가까이서 처음 본 히딩크는 자신만만했다. 수개월 전 프랑스,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5로 잇따라 지며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고도 “일류가 되려면 일류와 싸워야 한다”면서 잘릴 위기를 정면 돌파한 그였다. 자신감과 더불어 축구 실력을 ‘창의력’이라 말하는 그의 모습이 신선하고 인상 깊었다.
한국 축구의 숙원이던 월드컵 첫 승리와 16강 진출을 넘어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는 국가대표를 지휘한 역대 최고의 외국인 감독이다. 최근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배구를 4강에 올린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도 ‘히딩크 스타일’로 각광받기는 했어도 ‘히딩크급’에는 채 미치지 못한다. 히딩크는 이름만으로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감독’의 대명사로 통한다. 2002년 당시 히딩크 대표팀의 코치였던 박항서 베트남 감독은 승승장구하면서 ‘쌀딩크’라는 애칭을 얻었다.
히딩크가 한국에 남긴 발자취는 축구에 그치지 않는다. 학연·지연에 얽매이는 선수 선발을 배척해 박지성 같은 무명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위계를 내세우는 ‘형님 문화’를 없애 조직에 소통과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축구에만 국한된 메시지가 아니었다. 어쩌면 히딩크는 당시 한국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남긴 말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가능성은 50%다. 매일 1%씩 올려 100%를 만든다”….
히딩크 감독이 지도자 은퇴를 선언했다. 카리브해 소국 퀴라소의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다가 2022년 월드컵 진출이 무산되자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올해 75세. 팬들이 ‘박수 칠 때’ 한국을 떠난 히딩크는 이후 호주·러시아·터키 대표팀 등을 지휘하며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는 감독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40년 지도자 생활을 마감하는 지금 그의 기억에도 2002년 전성기를 함께한 한국이 가장 크게 남아 있을 것 같다.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찌르며 포효하는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가 눈에 선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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