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파서 슬픈 소녀, 엄마에게 빨간 하트를 안기는데..어디에 다녀온 걸까 [그림책]

백승찬 기자 2021. 9. 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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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의 시간
안데르스 홀메르 지음
뜨인돌 | 56쪽 | 1만4000원

사랑하는 엄마가 크게 아프다면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 도망치거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간>에는 글이 전혀 없다. 양면 가득 이어지는 그림으로만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한다. 글이 없다고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다. 각 그림의 속뜻과 그림 사이의 연계성을 따져야 책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세 여성이 그림에 자리했다. 꽃에 물을 주는 백발 할머니,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채 링거를 꽂고 앉은 여성, 책상에 앉아 있는 소녀다. 각각 할머니, 엄마, 손녀로 추정된다.

우리의 시간

엄마의 얼굴에는 병색과 우울이 완연하다. 딸은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울면서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걱정된 할머니가 문에 기대 기색을 살피지만, 손녀는 방구석에 처박혀만 있다. 문득 눈앞에 놓인 곰 탈을 바라본 소녀는 곧 탈을 쓴 채 창문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향하는 경사를 오른다. 경사면은 거대한 비행선의 내부로 연결된다.

탈 쓴 소녀는 비행선을 조종한다. 잠시 외부의 사다리에 매달려 구름을 잡기도 하고, 동물 음악대와 연주도 한다.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 울창한 숲에서 열매를 채집한다. 그러다가 파이프를 피우는 거대한 물소와 마주한다.

비행선으로 돌아온 소녀는 무언가 실험을 시작한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물감으로 새빨간 하트를 그린다. 하트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손에 쥔 소녀는 비행선을 나와 경사면을 내려온다. 집에 오니 엄마가 슬픈 눈으로 딸을 바라본다. 딸은 탈을 벗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긴다. 엄마 손에는 하트 종이가 쥐어져 있다.

다시 책 앞쪽으로 돌아가보면 소녀의 방 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소녀가 모험 중 보고 만난 것들의 조각이 곳곳에 놓여 있다. 슬픔과 불안에 압도된 소녀는 도망칠 곳을 찾다 못해 방 안의 물건과 옛 경험이 엮인 상상의 세계에 다녀온 것 같다. 빨간 눈동자의 거대 물소는 잠재울 수 없는 불안처럼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도망치지 않고 물소를 대한다. 다시 살펴보니 물감을 만드는 소녀의 입가엔 어렴풋한 미소가 묻은 듯 보인다.

소녀는 짧은 상상 여행을 통해 슬픈 현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배워야 할 지혜다. 스웨덴의 건축가 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첫 글 없는 그림책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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