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훈련체계 대수술..VR장비 쓰고 '메타버스'에서 실전처럼 싸운다

민병권 기자 2021. 9. 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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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권의 군사이야기]
軍에 부는 '4차 산업혁명 '바람
육군, 게임기반 플랫폼 등 도입해
2030년대 중반까지 훈련체계개편
실기동훈련·지휘연습에 융합키로
병사·상황별 숙련도·교전결과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과학적 관리
저소음 포탄 개발..민원도 해소
인프라 막는 환경규제 풀어야
병사들이 삼성전자의 '기어VR'을 착용하고 가상의 전장환경을 체감하며 훈련하는 이미지. 삼성전자는 이처럼 휴대용 가상현실 시현장비 등을 개발해 미군을 비롯한 전세계 주요국 국방 당국에 납품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육군도 이 같은 가상현실 기반의 훈련체계를 개발한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서울경제]

육군이 첨단 기술 중심으로 교육 훈련 체계를 대혁신한다. 군 복무 기간 단축에 따른 장병 숙련도 저하 우려를 풀고 주민 민원에 따른 훈련 차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육군은 이를 위해 관련 기술 기업 등과도 적극 협업할 예정이어서 방위산업을 통한 고난도 미래 산업 기술 활성화에도 가속이 붙게 됐다.

9일 군 당국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오는 2030년대 중반까지 단계적으로 장병 훈련 체계에 4차 산업혁명 기술 등을 적용해 장병들에게 실전과 같은 경험과 지식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게임, 가상 촉각 기술(햅틱),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등의 기술을 병사들의 실기동훈련, 제대별 지휘관 및 작전참모들의 지휘 연습 등에 점진적으로 융합하겠다는 것이다.

◇캐릭터 육성하듯 전투력 관리=육군은 우선 가상현실(VR) 속의 군사훈련을 보다 현실감 있게 실시하기 위해 ‘게임 기반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다. 육군은 이를 위한 사업 예산 반영을 추진하고 있다. 장병들이 해당 게임 기반 플랫폼에 접속해 등록하면 전투병과별로 개인별 전투력 지수 등이 표시된 아바타(avatar·사이버공간 속의 분신)가 생성된다.

예를 들어 소총병으로 등록하면 소총수 아바타가, 전차병으로 등록하면 전차 형상의 아바타가 사이버공간 속에 구현된다. 전투력 지수는 장병들이 어떤 훈련을 이수하고 어떤 자격을 따는지 등을 반영해 가감된다. 각 장병의 전투력 지수는 가상의 전투 훈련에 그대로 반영돼 가상 전투 결과나 훈련 성취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해당 시스템은 장병들이 마치 캐릭터 육성 게임을 하듯 복무 기간 중 아바타의 전투력 지수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도록 독려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조원희 육군 교육훈련정책과장(대령)은 “신세대인 ‘MZ세대’ 장병들은 기존 세대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강한 책임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서 (게임 기반 플랫폼 등을 적용해) 각자의 훈련·교육 성과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하게 되면 그만큼 더 열심히 전투 기술을 연마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육군은 해당 게임 기반 장병 훈련 플랫폼을 워게임 형태의 대대급 이상 지휘관·참모들의 ‘전투지휘훈련(BCTP)’과도 연계하겠다는 방침이다. 워게임 속 교전 결과가 훈련 참여 병사들의 실제 전투력 지수에 맞춰 실전처럼 정교하게 모사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다.

현재 육군의 과학화전투훈련(KCTC)에 지급되는 2세대 '마일즈(MILES)'장비의 모습. 소총사격과 수류탄 투척 등의 모의교전을 실전처럼 할 수 있도록 돕는 각종 센서장비와 훈련용 총기류 등으로 구성됐다. 육군은 이보다 정밀도가 크게 진보한 3세대 장비 개발을 추진한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홍보동영상 캡처

◇진짜처럼 전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기술 개발=육군은 BCTP뿐 아니라 일선 병사들의 실기동훈련에도 이 같은 실감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가상의 적군과 실기동 여단급 모의 전투를 벌일 수 있는 현행 육군과학화전투훈련(KCTC) 체계를 2030년대 중반까지 차세대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내용이다. 육군은 해당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소요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관련 기술 개발은 관계 부처 협업 형태의 국책 연구 과제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기술이 구현되면 KCTC 참가 장병들은 모의 전투 속의 전투 상황, 포탄 화염 등을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VR 시현용 안경 등을 지급받게 된다. 또한 햅틱 장비 등을 착용해 가상의 사격 소리, 폭격 충격에 따른 진동 등을 체감할 수 있어 한층 몰입도 높은 전투 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 기존에 보병부대만 참가 가능하던 KCTC에 기계화부대도 함께 참여하게 돼 탱크 등의 기동훈련도 한층 더 실전처럼 펼치게 된다. 아울러 이른바 3세대 ‘마일즈(MILES)’ 장비가 개발돼 모의 교전을 하는 병사들의 사격 명중 판정이 한층 정교해진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간부 및 장병 등이 과학화전투훈련(KCTC)의 모의교전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지령 등을 내리는 모습(사진제공=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홍보동영상 캡처)

◇개인별·상황별 맞춤 전투 전술 제공=이 같은 차세대 KCTC를 통한 개인·상황별 교전 결과와 숙련도 등은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될 예정이다. 예컨대 어떤 사수가 어느 정도 사격 거리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히 명중시키는지, 어떤 지형·지물 환경에서 어떤 교전 결과가 나오는지 등이 과학적으로 관리되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개인별·상황별 맞춤형 전투기술 및 전술 제공은 물론이고 보다 실전적인 교리(군사행동 기본 원칙과 지침)·교범 연구와 교육·훈련 프로그램 발굴, 무기·장구류 개발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육군은 이처럼 장병들의 훈련 체계를 ‘LVCG’로 발전시키고 있다. ‘L’은 실기동훈련(Live training), ‘V’는 가상현실 훈련(Virtual training), ‘C’는 모의 교전 훈련(constructive training), ‘G’는 게임 플랫폼(Game platform)을 뜻한다. 즉 기존 ‘합성전장훈련체계(LVC)’에 게임 기술을 융합하겠다는 의미다.

미군 병사가 탱크, 비행기, 무인기 등이 날아다니는 가상의 전장환경을 육안으로 보면서 훈련하는 모습. 방산기업인 레이시온 인텔리전&스페이스는 이처럼 가상 및 증강현실 기술 등을 적용해 병사가 어디서든 모의교전훈련 등을 할 수 있도록 '합성훈련환경(STE)'장비를 개발하고 있다/사진제공=레이시온 인텔리전스&스페이스

◇민원은 줄이고, 경제도 살린다=육군은 포격 소음 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해소하면서도 원활한 훈련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저소음 사격 훈련 체계’를 개발·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발포한 포탄이 목표 지점에 떨어질 때 나는 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훈련용 포탄 도입을 추진한다. 이와 더불어 발포 시 소음 완화 기술 개발도 단행된다. 우선 발포 소음의 확산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포 주변에 돔 형태의 차음 장치를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아울러 권총이나 소총 등의 총신에 장착하는 소음기처럼 포탄 발사 시의 음파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해 소리를 줄이는 대구경 화기용 소음기 개발도 고려되고 있다.

육군은 이처럼 실감나는 모의 교전 훈련 체계 및 저소음 사격 훈련 체계 등을 개발해 얻은 기술을 산업계에 공유해 상용화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기술 개발 과정에 민간 분야의 게임 기업과 정보기술(IT) 기업, 미디어콘텐츠 기업 등과 협력해 상생 발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향후 정책 과제는=이 같은 정책 목표가 달성되려면 우선 관련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우수기관·기업의 선정이 중요하다. 방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IT 산업과 전자 산업 대기업, 중견기업들의 인적·물적 기술 인프라는 잘 갖춰진 반면 중소·벤처기업들은 열악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각종 국책 과제 참여 기업 선정 시 대기업은 배제되기도 하고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더라도 대기업은 일정 비율 이상의 컨소시엄 지분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기 때문에 적극 참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같은 문턱을 정부와 군이 낮춰줘야 민·군 기술협력이 한층 고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림 규제, 환경 규정, 지역이기주의 등과의 상충 문제도 풀어야 한다. KCTC와 같은 첨단 군 시설을 신설하거나 확장 건설하려고 해도 보안 및 소음 민원 방지를 위해 산악 지역 등 오지를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해당 지역은 삼림법 등 각종 환경 관련 제도에 따라 개발이 제한돼 있다. 여기에 더해 군 시설을 기피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행도 걸림돌이다. 현재 육군본부가 ‘상생협력과’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이 같은 문제에 대응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관계 부처와 기관·지자체 등이 함께하는 범국가적인 갈등관리협의체를 만들어 보다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군 훈련 시설 확충 등이 직면한 문제를 풀어줘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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