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조선인력 8000명 양성".. 업계 "하도급 등 구조적 문제 풀어야"

김우영 기자 2021. 9. 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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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기술을 가진 분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조선산업 도약에 함께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경남 거제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 2022년까지 조선 인력 8000명을 양성하고 신규 인력 유입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조선업계가 최근 잇따라 선박을 수주해 연간 목표치를 채웠지만, 정작 배를 만들 사람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주 52시간제·저임금·하도급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결국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열린 K-조선 비전 및 상생 협력 선포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조선업계 인력 유출 막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경남 삼성중공업(010140) 거제조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명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가 훈련비·인건비를, 지자체가 4대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인력 이탈을 막고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채용 장려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까지 최대 8000명의 조선업 생산 인력을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정부가 이 같은 일자리 전략을 내놓은 이유는 당장 내년부터 조선업계가 인력난에 처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조선 3사와 중소형 조선사들이 올해 3월 수주 물량과 고용 인력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 하반기에 최대 8280명의 현장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인력 부족 현상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국내 최대 조선소가 있는 울산으로 최대 5972명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가 이뤄진 3월 이후 수주 물량이 배 이상 늘어난 만큼 필요 인력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올해 전 세계 발주 선박을 싹쓸이한 한국 조선업계가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이유는 수년간 이어진 불황 탓이 크다. 2015년 시작된 대규모 구조조정과 휴직 여파로 숙련공 상당수가 조선소를 떠났다. 당시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플랜트 및 건설 현장으로 대거 이직했다. 조선 3사의 직접 고용 인력만 봐도 알 수 있다. 2016년 말 4만6235명이었던 직원 수는 2020년 말 3만2748명으로 5년 동안 30%가 쪼그라들었다.

조선업계는 올해 하반기까지 인력 퇴출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의 고용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일감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산업 특성상 선박을 수주하면 설계 과정을 거쳐 실제 배를 짓는 기간은 1~2년 이후”라며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19와 업황 부진으로 조선소들이 수주를 못 하면서 올해 하반기 일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올해 수주한 선박이 일감으로 전환되는 2022년까지 조선소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기술연수생이 교육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 조선업계 “특별연장근로 180일로 연장 필요”

하지만 조선업계는 인력 부족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규 인력이 유입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유는 복합적인데, 일부 현장에선 열악한 처우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노동 강도는 높은데 장기 불황으로 임금이 낮아지면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협력업체들은 대형 조선소의 저가 수주를 문제 삼는다. 수년간 이어진 불황과 중국 조선소의 저가 공세로 국내 조선소들은 수년간 싼값에 선박을 수주해왔다. 문제는 조선소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하도급 업체에 비용 부담을 떠넘긴다는 점이다. 경남 거제의 조선기자재 업체 고위 관계자 A씨는 “소위 ‘단가 후려치기’로 하도급 업체에 부담을 전가하고, 이 업체가 다시 2차, 3차 재하도급 업체에 ‘후려치기’를 하면서 인건비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주 52시간제까지 도입되면서 잔업과 특근으로 추가 수당을 받을 기회까지 차단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이 힘들어도 기술도 배우고 야간·주말 특근으로 다른 제조업 대비 높은 임금을 챙길 수 있었다”라며 “그런데 지금은 협력사에 소속된 일반 인력이 한 달에 받아 가는 돈이 200만원도 안 된다.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 되니 젊은 인력들이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임금을 올려주기도 어렵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워지면서 캐파(생산능력)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매출이 줄어 해마다 오르는 최저임금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한다.

조선업계는 일감이 몰릴 때를 대비해 현재 연간 90일인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180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별연장근로를 적용받으면 주당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정부는 외국인 고용 쿼터제는 다소 완화했다. 그간 조선업계는 비전문취업 비자(E-9)로 들어오는 인원을 늘리거나 전문취업 비자(E-7)를 신설해서 기술이 좋은 외국인은 E-9 비자 만료(4년 10개월) 후 한국에 더 있을 수 있게 요구해왔다. 정부는 이번에 전문취업 비자에 ‘도장분야’를 신설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페인트칠을 맡기 때문이다. 다만 E-9로 들어오는 인원은 올해 5만2000명으로 작년보다 4000명 감소했다. 제조업 분야는 3만7700명으로 3000명 줄었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조선소. /한국조선해양 제공

조선업 기피 현상이 장기화되면 배를 지을 숙련공이 부족해지게 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10일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드나’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건설 현장에서 20만원 이상 받는 노동자가 조선소에 오면 14만~16만원 이상을 받지 못한다. 주 52시간이 적용되면서 잔업이 줄어 실질 임금이 줄어들고 있어 노동자들이 조선산업으로 오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의 기반이었던 조선소 노동자들의 숙련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위주로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폐지해야 신규 인력이 유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노동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기자재업체 A씨는 최근에서야 선가가 오르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10년 전 조선업계 호황기 때처럼 다른 산업보다 처우가 좋으면 신규 인력 유입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산업이 겨우 살아나는 상황”이라며 “조선업계의 경영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주 52시간제라도 한시적으로 유예해줘야 한다. 업체들의 실적이 개선되면 자연스레 임금도 오르고 처우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획대로 조선업계에 신규 인력 8000명이 유입된다고 해도 향후에 조선업 경기가 악화되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수년 뒤 다시 일감이 줄어드면 인건비를 부담하지 못하게 된 업체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일 수 있다. 2015년 경영난에 빠진 대우조선해양(042660)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업계 특성상 비정규직 하청 근로자의 비율이 높은 만큼 신규 유입 인원 대다수는 본청이 아닌 협력업체에 채용될 것”이라며 “이들은 일감이 없을 때 그만큼 쉽고 빠르게 퇴출될 여지가 높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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