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만 열심히 하면 지구 살릴 수 있을까?

서정원 2021. 9.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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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는 1958년부터 대기권의 이산화탄소 비율을 측정해오고 있다. 문명과 떨어진 외딴곳에 세워졌고 바람도 잘 불지 않아 지구 전체의 평균적인 이산화탄소 비율을 측정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측정값이 그리는 그래프 곡선을 보면 전체적으로 이산화탄소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그 추세가 주춤하는 세 번의 국면이 눈에 띈다. 197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 그리고 2008년 부근이다. 모두 경제 위기가 있었던 때다. 1970년대 중반에는 유가가 거의 두 배 넘게 뛰는 석유파동이 있었고, 1990년대 초에는 소련이 붕괴했다.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성격은 달랐지만 이 사건들은 모두 경제적 결과가 똑같았다. 생산은 줄고, 소비는 위축됐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었다.
책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은 오늘날과 같은 경제 성장은 곧 기후변화를 불러오고, 가팔라진 경제 성장은 환경 파괴를 앞당긴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 문명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허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인 마야 괴펠 로이파나대 명예교수는 독일 글로벌환경변화학술자문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로마 클럽·세계미래회의·독일 연방정부 바이오경제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 환경을 고민해오고 있는 정치경제학자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이미 인간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충분히 생산하고 있고 먹고살기 위한 경제가 돈벌이를 위한 경제로 변하며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무엇이 발전이며, 바람직한 경제란 어떤 것인지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성장과 풍요에 너무나 많은 비용이 계산되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항공편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뉴욕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때 연료비는 포함되지만, 이 비행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권에서 제거하는 비용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 비행으로 승객 한 명당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3t이 넘는데도 말이다. 항공사는 물론이고 유류를 공급한 업체도 모두 이 비용을 무시한다. 저자는 '외부 비용'을 운운하는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슬쩍 뭉개는 뻔뻔함이라며 이런 무책임한 행동의 대가를 치르는 쪽은 해수면이 높아져 물에 잠기는 섬나라들,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는 빈민들, 우리가 망가뜨린 세상에서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후손들이라고 꼬집는다.

일견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는 재활용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불편한 것은 내다 버리고, 쓸모 있는 것은 들여올 따름"이라고 촌평한다. 뷔르츠부르크-슈바인푸르트 전문대학 연구팀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2018년 기계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외국으로 수출했다. 합성물질 쓰레기는 전체량의 5분의 1이 말레이시아·인도·베트남 등 외국으로 팔려 나갔다. 또 거의 매일 175대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 가나·나이지리아·카메룬 등으로 수출된다. 물론 아예 재활용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과잉 생산과 소비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미봉책이라는 주장이다. 해당 상품의 생산과 수송뿐만 아니라 마지막 폐기처리 비용까지 감안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한 부분도 가격에 반영하는 등 회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은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이 전체로 모이면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경제 시스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정책이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일 농산물 시장을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사례로 든다. 책에 따르면 독일에서 유기농 식품의 시장점유율은 유기농을 취급하는 대형 할인마트가 늘었음에도 10%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친환경 육류의 경우 2%이고, 종류에 따라서는 1%가 안 되는 품목도 있다. 이는 친환경 식품이 너무 비싸서 그런 게 아니다. 대량생산된 식품이 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농업 지원금 제도의 개혁을 제시한다. 친환경 식품에 지원금을 더 줘 산업적으로 대량생산된 식품과 친환경 식품의 가격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주문이 활성화되며 더욱 중요해진 반품 수수료 문제도 있다. 독일에서는 매년 2억개가 넘는 물건이 반품된다. 밤베르크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반품 수수료를 3유로(약 4000원)로 책정하면 반품 개수가 8000만개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상인들 예측이다. 이러면 배송에 드는 연료가 줄어들어 약 4만t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1년 동안 4000명의 독일 국민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량과 맞먹는다. 하지만 반품 수수료 인상 혹은 도입은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온라인 주문을 즐겨 그만큼 많이 반품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마존 등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들도 반대 입장이다. 반품비는 소비자, 유통업체, 납품업체 등이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데 자신들의 부담액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 생산업체들의 시장 진입도 어려워져 유통채널 입장에선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국가가 개입해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반품 수수료가 환경에 주는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다 같이 도입하면 누구에게도 특별히 손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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