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여백에 상상력 더하면 재무제표 너머 투자 길 보인다

이향휘 2021. 9. 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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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금융 수업 / 미히르 데사이 지음 / 이종호 옮김 / 더퀘스트 펴냄 / 2만원

■ 매경·예스24 선정 '9월의 책'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간만에 밑줄 쫙 긋고 열공해야 하는 책이 나왔다. 세계 1% 리더들이 열광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명강의를 기반으로 한 '재무' 책이다. 재무라는 말만 나오면 지레 겁먹고 움츠러들지는 않는지. 하지만 회사를 경영하려면, 또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기업 운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재무제표를 읽고 해석하는 '재무 스킬'이 필수다. 더 나아가 재무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재무제표 읽는 법을 소개한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쉽고 친절하게, 또 게임 방식으로 독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 책이 있었던가.

저자 미히르 데사이는 월가 애널리스트 출신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이자 법학대학원의 법학 교수다. 그의 강의는 2001년 우수강의상 수상을 포함해 학생들이 직접 뽑은 명강의로 세 차례 선정됐다.

데사이 교수는 한 페이지 가득 익명의 14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여주고, 어떤 기업인지 또 어떤 산업인지를 독자에게 알아맞혀 보라고 독려한다. 14개 기업엔 페이스북, 아마존, 델컴퓨터, 듀크에너지, 노드스트롬, 마이크로소프트(MS), 씨티그룹, 반스앤드노블, 사우스웨스트 등 다양한 업종의 대표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처음엔 현금, 매출채권, 유형자산, 장기부채 등 숫자의 나열이 막막하기만 했는데 저자의 설명과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납득이 된다. 왜 재고가 제로인 곳이 있는 반면, 다른 곳은 수치가 높은지. 또 재고회전율과 매출채권 회수 기간에 따라 업종을 예측할 수 있고, 왜 기업이 우선주를 발행하는지 등등 숫자 너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중간중간 '생각해 보기' 코너를 통해 최근의 기업 동향을 쉽게 알려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MS가 링크드인을 인수하는데 왜 장부가치의 3배 가까운 돈을 지급했는지, 어느 기업의 부채가 위험이 큰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준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퀴즈가 기다리고 있어 독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다.

재무분석과 재무비율이 재무의 시작과 끝은 아니다. 저자는 최근 재무적 흐름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한다. 첫째는 현금이 순이익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래가 과거나 현재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이네켄의 전설적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로랑스 드브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항상 이 문장을 떠올립니다. '매출은 헛되고, 결과는 중요하고, 현금은 왕이다'라는 문장을. 매출과 순이익이 얼마 늘었는지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금입니다."

기업이 파산한다면 그 원인은 대체로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투자를 결정하거나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잉여 현금흐름이 왜 중요한지, 또 재무에서는 잉여 현금흐름을 가장 이상적인 현금흐름으로 생각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특허나 브랜드 등 기타 자산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도 최근의 지배적 흐름이다.

재무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기관투자자, 애널리스트, 기업의 엇갈린 이해관계와 비대칭 정보의 문제도 지적한다. 또 기업의 가치 평가가 왜 과학을 가장한 예술인지, 또 남아도는 현금흐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도 던진다. 결국 이를 통해 저자는 단지 숫자로만 이뤄진 무미건조한 곳이 아니라 게임을 하듯이 상상력과 스토리를 동원해 여백을 채워야 하는 영역이 곧 재무의 세계라는 사실을 멋지게 증명한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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