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는 게 뭐에요?"..임경희 선생님의 그림책 죽음 교육 Q&A
[경향신문]
임경희 교사는 얼마 전 특별한 수업을 했다. 불의의 사고로 같은 반 친구를 잃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죽음 교육이었다. 별이 된 친구와 가장 친하게 지낸 선우(가명)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겪고 힘들어한다는 걸 느끼면서 위로가 되었다”는 후기를 보내왔다. 임 교사는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보여주신 그림책이 제가 기댈 수 있고, 저를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어른 같았습니다.” 위로를 받은 건 담임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노숙인 인문대학, 상조회사, 호스피스 관련 기관, 교사와 의료진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교육을 해온 임 교사는 최근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학교도서관저널)을 출간하며 30여 년 교직 생활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학생이나 교사가 죽음을 겪는 일이 생겼을 때 사회나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인생 최대의 충격과 슬픔인데도 말이죠. 누구나 슬픔과 애도 치유를 제공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이름하여 ‘그데함’이라고 했다. ‘그’림책으로 ‘De’ath(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기. 임 교사는 “교도소나 노숙인, 독거 노인, 다문화·탈북 가정 등 소외받고 사회의 취약한 분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는 동안 무수한 죽음에 맞닥뜨린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일상과 맞닿아있는 죽음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일러주면 좋을까. 임경희 교사에게 지혜를 구했다. 임 교사는 “좋은 부모는 나름대로의 사생관(死生觀·죽음을 통한 삶의 견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문제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Q. 4살 아이가 죽는 게 뭐냐고 물었는데 순간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이 연령대 아이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안내해 주세요.
A. 유아기에 죽음을 궁금해 하는 것은 발달 단계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벌써’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추상적으로 둘러대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사람만 죽으니 너는 걱정할 것 없어”라고 ‘나이’에 초점을 맞추면 아이는 엄마 아빠가 먼저 죽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죽는다는 건 깊이 잠드는 거야”라고 했다가 아이가 잠과 죽음을 동일시해 한동안 잠들기를 무서워했다는 사례도 있지요.
“사람은 왜 죽어? 난 죽기 싫거든.” 6살 고야마 사에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 난감했던 엄마는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 Q&A코너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양한 세대의 독자가 묻고 그림책 작가이자 시인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답하는 이 코너에서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라면 ‘나도 죽기 싫거든’이라고 하면서 사에 짱을 꼭 끌어안고 같이 울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같이 차를 마시는 거지요.” 말로 던져진 질문에 반드시 말로 대답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시인은 이런 의미심장한 질문에는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같이 대답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시인의 답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이에게 똑 떨어지는 답을 해주겠다는 생각 이전에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라고. 저라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서 중간 중간에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되물어 보겠습니다. 답을 가르치려는 자세보다 어린 철학자와 진솔한 대화를 하려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른도 어려운 죽음을 아이에게 그저 말로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겠습니다. 글과 그림이 훌륭한 그림책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에서는 ‘잠든 듯 보이지만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표현이 이해를 돕습니다.
부모라면 나름대로 바람직하거나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들려주고 싶겠지요. 일단 아이들은 어떤 질문이든지 할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져보세요.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맥락 없이 단답형으로 질문에 대한 답만 주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대화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이라는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고만 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Q. 아픈 노령견을 키우고 있어요.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거 같아요. 초등생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이 얘기를 시작하면 좋을까요.
A. 반려견은 가족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반려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사람의 죽음과 다르지 않기에 그 준비가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브라이언 멜로니·마루벌)은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을 다한 것들을 번갈아 보여 주면서 저마다 고유한 수명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생명을 품은 알, 수명을 다한 총알고둥 껍데기, 작은 벌레, 죽은 게 등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오로지 ‘삶’과 ‘죽음’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합니다. 글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풍부하게 이끕니다.
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은 ‘아, 생명이 있는 것들은 저마다 수명이 있고 영원히 사는 것은 없구나’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반려견 역시 언젠가는 수명을 다해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까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동물의 죽음을 담은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고양이 친구 바니의 장례식을 그린 <바니가 우리에게 해준 열 가지 좋은 일>(주디스 바이어스트·파랑새어린이), <모그야, 잘 가>(주디스 커·대교출판), <밤밤이와 안녕할 시간>(글 윤아해·그림 조미자·스콜라)을 추천합니다.
Q. 초등생 아들이 “죽어라, 죽어라”라고 외치면서 게임을 합니다.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고 하니, 게임 캐릭터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 아무 문제 없다네요. ‘죽어라’라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까요.
A. 아이들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죽여버리겠다, 죽어버려라는 말들을 별 의미 없이 씁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죽음과는 거리가 먼 말들을 툭 내뱉듯이 하는 겁니다. 어린 아이들은 게임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현실과 게임 속의 상황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실제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생명 있는 것들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림책으로 대화를 나눠보세요.
<죽으면 어떻게 돼요?>(페르닐라 스탈펠트·시금치)는 그림책을 넘기면 곧바로 죽음을 정의하는 간단한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에둘러 이야기하든, 죽음은 결국 한 생명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생각과 상상이 유머러스한 그림과 함께 펼쳐집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죽음은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죽음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도 상기시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상상력을 곁들여 이야기하고, 문화와 종교마다 다른 장례식 풍경도 보여 줍니다. 지나친 감상에 젖어 있는 이야기나 추상적인 설명이 배제된 이 그림책은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직구’와도 같습니다.
Q. 아이와 뉴스를 보다보면 산업 재해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의 소식이 간간히 나옵니다. 아이와 이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제가 감당하기에는 좀 무거운 주제네요.
A.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감정과 안타까움을 불러옵니다. 일단 학교 수업은 아니니 산업재해의 원인,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현황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산업 재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의 슬픔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엄마, 달려요>(글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 천위러우·그림 천루이추·시금치)는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TAVOI)에서 산재로 가족을 잃은 이들, 가족의 부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이들이 사연을 모았습니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유년 시절, 그때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되새겨본 결과물이자 상해와 죽음을 마주한 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나’가 병원 침대에 누운 아빠를 보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엄마는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고 다시 깨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엄마의 머리 위로 난데없이 구름이 한 조각 생겨납니다. 난데 없는 산업 재해로 아빠를 잃은 아이와 가족을 만나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명해보세요.
Q. 지인의 유치원생 아이가 조모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아이도 가까운 분들의 장례식을 경험할 텐데요. 미리 해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장례식을 그냥 말로만 설명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장례식을 배경으로 하거나 장례식 과정이 담긴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답’이 아닌 대화를 해보세요. 일단 아이 주변에 있는 식물과 동물의 죽음을 다룬 <쨍아>(천정철·창비)같은 그림책을 먼저 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쨍아는 꽃밭에 사는 잠자리인데요. 쨍아가 죽고부터 개미들이 장사를 치르는 장면에 이어 쨍아가 다시 과꽃으로 피어나는 장면을 담은 아름다운 시그림책입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의 표현 방법처럼 감자에 꽃 모양을 새겨 물감을 묻히고 종이에 찍기 놀이를 하면서 대화해보세요. 자연스럽게 자연의 순환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딕 부르너의 <사랑하는 할머니>(비룡소)는 막 할머니를 잃은 미피가 주인공으로 아이가 가족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줍니다. 죽음에 관해 돌려 말하지 않고 글과 그림이 간결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어 초등 저학년이나 취학 전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잠든 듯 보이지만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는 간결하고 담백한 표현이 죽음에 관한 이해를 돕습니다. 가족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관을 들고 숲으로 가고, 아빠 토끼가 편지를 읽는 장례식 풍경도 정갈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문장은 미피의 눈에 비친 ‘가족의 죽음’을 직관적으로 보여 줍니다. 아이의 충격을 덜어 주려고 죽음을 미화하고, 에둘러 이야기하는 방법이 능사는 아닙니다. 이 그림책처럼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입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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