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구하기도 어려워요".. 이주 앞둔 반포주공 세입자들 발 동동

최온정 기자 2021. 9.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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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뒷편 빌라도 보고 있는데 값이 워낙 올라 집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가 이주를 개시하자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전셋값 상승기에 한꺼번에 이주 수요가 몰린 데다 학군지라 인근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 전세 품귀현상이 일어난 탓이다. 인근 빌라 전셋값도 치솟으면서 코너에 몰린 세입자들은 단체행동에 나설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일부 집주인들이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이주기간을 늦추거나 앞당기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세입자들의 불만을 키우는 모양새다.

◇ 전셋값 상승기에 이주수요 몰리자 빌라 전셋값도 5억~6억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반포주공 1단지 거주자들은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인근 빌라와 다세대가구로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전용면적 59㎡ 정도의 빌라 전셋값이 5억~6억원대에 달하고 그마저도 매물이 없는 상황이다.

2020년 6월 촬영된 반포주공1단지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이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2120가구)와 반포3주구(1490가구)의 이주기간이 겹친 데 따른 것이다. 한꺼번에 3500가구의 이주 수요가 몰리다보니 인근 전세 매물의 씨가 말랐다. 서울시가 이주기간의 시차를 두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세값 상승기와 맞물리면서 전세난은 심화되는 모양새다. 1·2·4주구는 올해 6월부터, 3주구는 이달부터 이주가 시작됐지만 두 사업장 모두 11월까지 이주를 완료해야 한다. 반포 1단지 재건축조합에 따르면 반포 1·2·4주구는 60~70%의 주민들이 이주를 완료했고, 3주구는 이제 막 이사를 시작했다.

학군지라는 점도 인근 전셋값을 오르게 하는 원인이다. 전세가격이 올랐으니 세입자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법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자녀를 강남 8학군(강남구, 서초구)에 보내기 위해 이사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포주공1단지의 한 주민은 “이곳은 단지 거주민 중 절반이 세입자인데, 학군을 보고 이사온 경우가 많다”면서 “어떻게서든 주변에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사갈 곳을 알아봐달라는 분들이 많은데 인근 아파트의 전셋값이 8억원을 훌쩍 넘기고, 또 매물도 없기 때문에 계약을 성사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 아파트가 애초에 철거를 앞두고 있어 전셋값이 워낙 싸게 형성돼있었기 때문에 인근 시세에 맞춰 이사를 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9월 이 단지에서 거래된 전세계약의 경우 전용면적 104.89~140.13㎡ 아파트 보증금이 2억~7억원 수준에서 형성돼있었지만, 올해 9월엔 59.98~84.85㎡의 보증금이 7억~12억6000만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계약 당시 낸 보증금으로 현재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같은 역권인 삼호 1~3차 아파트도 현재 전세가격이 7억(81㎡)~12억원(116㎡)대로 형성돼있고, 반포래미안퍼스티지도 전용 84㎡ 전셋값이 20억원에 이른다.

◇ “갈 곳 없는데 집주인인 자기 생각만”… 코너에 몰린 세입자들 단체 행동 시사

전세난과 집주인들의 등쌀에 밀려 코너에 몰리자, 일부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단체행동을 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위원회는 현재 주기적으로 모이면서 대응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D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세입자들 모임이 만들어져 아파트 인근에서 논의를 하는 경우를 봤다”면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최근 상황이 워낙 힘들다보니 이런 단체가 형성됐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주를 둘러싸고 세입자와 집주인이 원만하게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아지면서 갈등이 커지는 모양새다. 일부 집주인들은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세입자들에게 최대한 늦게 혹은 빨리 이사하기를 요구하면서 협조적으로 나서지 않아 세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1·2·4주구에서는 집주인들이 관리비를 내지 않으려 세입자들에게 이주 시점을 늦춰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3주구에서는 하루가 지날때마다 9만원씩 차감되는 이주장려금을 아끼기 위해 오히려 이사를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주장려금은 조합이 사업기간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빨리 이주를 마친 집주인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반포3주구 소유주인 최모씨(60대)는 “세입자를 두고 있는데 추석 즈음에는 나가게 하려고 생각 중”이라면서 “집을 구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이주장려금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고 집주인들도 11월 기한에 맞춰 이사를 가야하는 만큼 세입자를 빨리 내보내려고 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한편 일부 세입자는 이주장려금을 나눠주지 않으면 일찍 이주를 나가는 데 합의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반포3주구 세입자인 김모씨(45)는 “이주 얘기가 나오길래 빨리 전세를 구해 나가려고 했는데 새로 세입자를 맞춰 넣고 복비를 넣으라던 집주인이 이제 빨리 나가달라고 한다”면서 “그새 예산에 맞는 집은 다 사라졌고, 갈 곳도 없다. 이주장려금이라도 나눠 받아야겠다”고 했다.

◇ “이 시점에 전세자금대출 규제하면 세입자들 더 패닉”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한, 집을 찾지 못한 세입자들의 불만은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금융권은 전세자금대출을 비롯한 대출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주택뿐 아니라 토지 등 모든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 신규 접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 전세자금대출부터 마이너스통장까지 전부 여신한도를 축소하는 수순에 있다”면서 “이 같은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집을 구하지 못해 당황하는 실수요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또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인근 전세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전세가격이 그렇지 않아도 오르고 있는데, 재건축 이주수요까지 겹치면 중저가 전세시장도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면서 “이수나 사당, 용산, 마포지역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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