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뚫고 들어온 향기'..지하철역에 꽃집이 늘어나는 이유

장회정 기자 2021. 9. 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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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하철역에 속속 꽃집이 들어서며 출퇴근길 및 지하철 이용객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지하철역에 꽃집이 생겨 기분 좋다” “소소한 즐거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향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하철역 꽃집’ 언급량이 많아졌다. 외국 여행 후기에나 종종 등장하던 지하철역 꽃집이 늘고 있다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실제로 지하철역 내 꽃집이 증가했다. 2019년 11곳에서 2020년 8월 말 현재 49곳으로 2년 새 5배가량 늘었다. 지하철역 상가도 유행을 탄다. 공사 관계자는 “한때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이 급격히 늘어나 가격 경쟁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며 “2017년 뚝섬역을 기점으로 등장한 지하철역 꽃집은 수익적으로 괜찮다는 인식이 깔리면서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2·5호선 을지로4가역 상가의 호두과자가게도 최근 꽃집으로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의 꽃집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플라워샵’은 5인의 플로리스트가 팀을 나눠 근무하고 있다. 1만원에 판매하는 오늘의 꽃다발도 인기다. 플라워샵은 신당역에도 매장이 있다. ‘플라워샵’ 제공


꽃집 경력 30년의 신귀자 대표는 지난해 8월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에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플라워샵’을 열었다. 신 대표는 “로드숍(지상 상가) 임대료가 너무 많이 올랐고 코로나로 오가는 사람도 줄어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으로 옮겼다”며 “플로리스트가 살아남기 위해 고객을 찾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입찰 형식을 통해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권리금이 없다는 점에서 지하철역 상가는 세입자들에게 매력적인 입지로 통한다.

지난해 8월 2호선 신촌역에 자리를 잡은 ‘꽃이 오면’은 1990년대 중반 지하철역에서 꽃집을 하던 오면 대표가 교육 사업을 위해 지상으로 올라갔다가, 돌아온 케이스다. 인근에서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는 오면꽃예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오 대표는 “수강생들의 취업처 삼아” 지하철역에 직영점을 열었다. 약속이 많은 신촌역 1번 출구에 인접한 꽃집 앞은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금호역 꽃집 ‘오늘’은 이웃들이 마음 편히 들르기 좋은 환경과 가격으로 단골을 늘리고 있다. 연중 판매하는 ‘3대 5000원’ 미니 꽃다발은 환경을 생각하는 포장으로도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오늘’ 제공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3호선 금호역에 들어선 꽃집 ‘오늘’은 이소연 대표의 첫 창업이다. 소상공인 아카데미 등 관련 교육을 받고 오랜 기간 상권 분석을 한 이 대표는 편리성, 접근성 등을 고려해 금호역을 골랐다. 또한 “나이가 있다보니 역사 내 상가가 안전 면에서도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인 이 대표는 지하철을 오가는 이웃들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꽃집의 벽을 유리로 처리하고 늦은 시간에도 불을 환히 밝혀둔다. 지나치게 ‘예쁜’ 인테리어가 고객에게는 문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장식을 줄여 드나듦이 편하도록 했다. 연중 ‘꽃 3대에 5000원’ 상품으로 가격의 벽도 낮췄다. “철마다 꽃구경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꽃을 많이 안 사는 한국인”을 위한 마케팅 전략은 주효했다.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이면 고속터미널역 꽃도매상가에 갈 수 있는 동네지만, 소량의 꽃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단골이 늘고 있다. ‘플라워샵’의 신 대표도 ‘오늘의 꽃다발 1만원’ 코너를 유지하고 있다. 꽃 수요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선물용 구매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나를 위한’ 구매자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해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힐링을 위해 꽃을 산다는 분들이 많아요.”

꽃이 특별한 날의 이벤트를 벗어나, 일상으로 들어오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오늘’에서는 과감하게 꽃바구니를 취급하지 않는다. 고객이 원할 경우, 물꽂이화병을 권한다.

“포장 기술이 발달했지만, 바구니나 플로럴폼 등은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잖아요. 꽃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크래프트지 정도만 최소한으로 쓰고 마끈으로 묶어드려요. 생일이나 기념일용이면 리본 정도 추가하고요. 꽃에 중점을 둬서 포장비용으로 꽃을 더 드리려고요. 환경과 연관된 방침이라는 걸 고객들도 이해하시고 반응도 좋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의 꽃집 ‘꽃이 오면’은 약속 많은 신촌역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꽃이 오면’은 인근에 자리한 오면꽃예술학원의 직영점이다. ‘꽃이 오면’ 제공


한때 지하철역에 일명 꽃다발 자판기로 불리는 무인 판매대가 등장했으나, 말린 꽃 위주 판매라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싼 가격도 단점이었다. 지하철역 꽃집이라고 해서 어버이날이나 스승의날을 앞두고 꽃바구니를 늘어놓았던 ‘난전’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 대표는 “지하철역 꽃집이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요즘은 고객의 안목이 높아요. 또 콘셉트가 뚜렷한지, 친절한지 SNS를 통해 평점이 공유되는 시대라 어설프게 하면 문을 닫아야 해요. 정리 정돈, 쾌적함, 고객대응 매뉴얼까지 공부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플라워샵’ 장지역점의 경우 12.85㎡의 아담한 공간이지만, 신 대표 포함 플로리스트 5명이 팀을 나눠 근무하고 있다. 신당역점까지 총 8명의 직원을 둔 전문숍이다. 오면 대표는 “코로나 시대 꽃이 주는 효능”을 언급하며 접근성을 공략한 식물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꽃향기로 출퇴근 이용자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감안해도 역마다 꽃집이 하나씩 생겼으면 좋겠다”는 그는 매장 확장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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