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되살아나는 '김대업 악몽'

기자 2021. 9.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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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대선판 흔드는 폭로전 재연

언론-여당-시민단체로 확산

兵風 피해 이회창 2.3%P 패배

고발 사주 의혹도 비슷한 궤적

與·검찰이 앞장서서 의혹 확산

국민 선택 왜곡 다시는 없어야

한비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나온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도 믿는다는 것이다. 거짓말도 여럿이 하면 참말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4·15 총선을 12일 앞두고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시켜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웅 의원에게 최강욱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기자 등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이면 검찰 조직을 사유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공작(工作)’ 의혹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대선 때마다 나오는 폭로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2002년 대선판을 흔들었던 ‘김대업 병풍(兵風)’과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기시감이 든다. 의무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은 사기 행각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1년 넘게 수사관 행세를 했다. 수감 중인데도 병역비리를 판별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검찰 수사를 돕기도 했다. 2001년 3월 사기 혐의로 구치소에 있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된 김길부 전 병무청장에게 검찰 수사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자백을 회유했다. 출소 후 김대업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김길부로부터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 등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열었고, 그에 따라 병역판정부표를 파기했다는 진술을 들었다”고 제보했다. 녹음테이프도 있다며 신빙성을 더했다.

당시 오마이뉴스 보도 제목은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열었다’ ‘병무청 간부 폭탄 진술 뒤 부인’ 등이었다. 민주당은 병역비리가 드러났다며 이회창 후보를 심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고, 대선 전까지 발표한 논평만 249회에 달했다. 인터넷 신문의 보도를 신문, 방송이 받아 확대 재생산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며 시민단체까지 가담했다. 전방위 공세에 이 후보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불과 2.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결정적 증거라는 녹음테이프는 ‘녹음 시점’보다 2년 뒤 생산된 제품인 것으로 드러나는 등 사기의 전모가 밝혀졌다. 당시 수사 검사가 “김 씨는 거짓과 사실을 교묘하게 뒤섞어놓는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온 국민을 농락해 놓고도 김 씨는 “대선이란 전쟁터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웠다”고 큰소리쳤다. 김대업의 거짓말에 언론과 검찰, 야당과 시민단체가 한통속이 됐지만 이 후보 입장에선 버스가 이미 지나간 뒤였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고영태의 경우도 그와 측근들이 최 씨와 대통령 관계를 악용해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보한 것이 전화 녹취록 등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워낙 ‘최순실 국정농단’의 프레임이 강력하다 보니 이런 사실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번 고발 사주 의혹도 평행이론처럼 닮아간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처음 보도했고 여당이 문제를 키웠다. 친여 매체들이 앞장서 보도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감찰 조사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윤 전 총장과 손 정책관 사이에는 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윤 전 총장이 손준성 검사를 대단히 가깝게 활용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등 윤 전 총장 개입에 군불을 땠다. 제보자는 친여 성향의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에게 공익신고자 신청을 했고, 대검은 전광석화처럼 발표했지만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는 월권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감찰을 수사로 전환해 윤 전 총장을 입건해 조사하는 시늉을 할 것이고, 공수처는 10일 재빠르게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을 함으로써 ‘수사 경쟁’에 나섰다. 이러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떨어져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여권으로선 최선이다. 시간과의 싸움인 대선 국면에서 ‘사실 규명’이라는 프레임은 문제 제기 진영에 유리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편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 손 전 정책관이 작성했다는 증거가 나와도 윤 전 총장과 연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결국 ‘검찰 사유화’인지 ‘공작’인지는 유권자 판단의 몫으로 넘겨야 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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