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모든 것이 꿈과 같다

광우 기자 2021. 9.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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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 스님·화계사 교무국장

모든 것이 꿈·환상이라고 해도

인생 막살아도 된다는 건 아냐

밥 안 먹으면 당연히 굶어죽고

물을 안 마시면 목말라 죽는 것

매순간 최선 다하는 것이 중요

다만 집착하지 말아야 삶 충만

옛날 옛적에 장주(莊周)라는 인물이 있었다. 세상일에 초탈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며 심오한 통찰력을 지닌 장주는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기로 유명했다. 장주의 사유를 문장으로 엮고 후대 사람들이 말을 조금씩 덧붙여 ‘장자(莊子)’라는 책을 만들었다. 장자를 보면 아주 유명한 나비 꿈 이야기가 펼쳐진다. 장주가 꿈을 꾸었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됐다. 스스로 기뻐하며 마음에 흡족하니 꿈속에서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깨어보니 원래 장주로 돌아왔다. 모르겠노라!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침중기(枕中記)’라는 옛 책을 보면 일침황량(一枕黃粱)이란 고사성어가 나온다. 일침황량은 ‘한 개의 베개와 누런 기장쌀’이란 뜻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 시대에 노생(盧生)이라는 가난한 서생이 있었다. 볼일이 있어 한단(邯鄲)에 갔다가 잠시 객점에서 쉬었다. 그때 여옹(呂翁)이라는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됐다. 노생은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여옹이 웃으며 베개를 꺼내 주면서 이 베개를 베고 자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객점에서 노란 기장밥을 짓고 있었는데, 노생은 밥때를 기다리다 피로함을 못 이겨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은 순식간에 베개 안으로 쏙 들어갔는데 별천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최 씨 집안의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노생은 승승장구하며 오랫동안 재상을 지내다가 역적으로 몰려 큰 화를 입었다. 노생은 옛적 고향에서 농사짓던 때를 그리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의 간곡한 만류로 차마 자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멀리 유배를 떠났다. 몇 년이 지난 뒤 모함이 밝혀져 복권됐고, 그 후로 더욱 지위가 높아졌다. 노생의 말년은 화려했으며 자손들이 모두 권세를 이뤄 누구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노생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80여 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었던 노생은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 일어나고는 갑작스레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피니 옆자리에는 여옹이 앉아 있고, 아까 보던 노란 기장밥은 아직도 익지 않은 상태였다. 짧은 낮잠 속에 팔십 평생을 살다가 눈을 떠보니 이전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노생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모든 것이 꿈이었구나.”

인도불교에서 발전한 유식사상(唯識思想)이라는 복잡한 가르침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라는 교리를 체계적으로 해석한 일종의 불교심리학이다.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치밀하고 번쇄한 논리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유식사상을 설명할 때 자주 써먹는 영화가 있다. ‘매트릭스’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세계가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상세계다. 너무 생생해서 진짜 현실과 가상세계가 분간이 안 된다. 심지어 가상세계에서 죽었는데 현실에서도 죽음을 맞이한다. 가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눈을 떠야 비로소 ‘아, 내가 진짜라고 여겼던 체험이 사실은 가상체험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밀고 가면 철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진짜 현실로 돌아왔는데 그럼 진짜 현실은 과연 진짜가 맞는 거냐?’ 이쯤 되면 머리가 핑핑 돈다. 그래서 단순명료함을 지향하는 사람은 이렇게 머리 쥐나는 얘기를 들으면 꼭 이런 말을 던진다. “야! 밥이나 먹어.”

불교의 금강경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모든 것이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다고 바라보라.’ 모든 것들을 꿈과 환상 등등으로 바라보라는 말이 무슨 꼭 인생 포기하라는 뜻처럼 들린다. 악착같이 살아도 버거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꿈과 같다고 생각하며 살라니, 회사 운영하는 사장님이나 군대 지휘관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과거에 위대한 명상 스승이 있었다. 한 사람이 찾아와 스승에게 물었다. “당신은 모든 것이 꿈과 같고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르칩니다. 어차피 꿈과 환상이니까 그냥 막살아도 되겠습니까?” 평소에 이런 질문을 지겹도록 받았던 스승은 이미 준비된 모범 답안이 있었다. “모든 것이 꿈이라고 해 봅시다. 그런데 당신이 밥을 안 먹으면 굶어 죽습니다. 당신이 물을 안 마시면 목말라 죽습니다. 모든 것이 꿈이라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병 걸려 죽을 겁니다. 일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살면 결국 후회를 남길 겁니다.”

스승은 말을 이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세요. 늘 건강을 챙기세요. 열심히 일하며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착한 덕을 쌓으세요. 단, 모든 것이 꿈과 같고 모든 것이 환상과 같으니 집착 없는 마음으로 이 순간 최선을 다하세요. 집착을 가지고 노력할 때 당신은 갈수록 지쳐갑니다. 집착 없이 최선을 다할 때 당신의 삶은 더욱 충만할 겁니다.”

인생이란 과연 모든 게 한바탕 꿈일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저 묵묵히 집착 없이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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