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책과 삶]
[경향신문]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지음 | 민음사 | 352쪽 | 1만6000원
‘주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는 시대에 달갑지 않은 제목의 책이다. 주식투자 성공담들도 분명 들려오는데 ‘편향된 실패담’만 모은 책이 아닐까 의심도 든다. 저자는 자신도 “주식과 해외선물투자로 100억 벌어 편하게 공부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교수에게 호언하던 사람이며 “개미들은 절대로 그렇게 많이 벌 수 없다”고 한 교수의 생각이 틀렸다는 증명을 하고 싶던 사람이라고 책머리에 소개한다.
저자는 ‘개미도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명제를 바라보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결론은 ‘왜 개미는 실패하는데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가’로 흘렀다. 책은 ‘주식투자를 하지 말아라’ ‘개인투자자는 필패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개미들이 실패라는 함정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그러면서도 그 덫에서 빠져나오는 건 얼마나 힘든지를 행동경제학과 개인투자자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동원해 설명한다.
먼저 저자는 주식투자가 이유를 불문하고 “열심히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며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가”라고 한탄한다. 또 “위험이 더 큰 이익을 불러올 수 있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변주”됐다며 현재 한국 사회를 가득 채운 ‘재테크 담론’은 “더 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더 많은 돈을 유입하기 위한 ‘프로모션’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저자가 연구를 진행한 장소는 이른바 ‘매매방’이다. 매매방은 투자를 ‘전업’으로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상주하는 임대 공유 사무실이다. 15만~30만원가량의 월세를 내고 매매방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개장 이전에 나왔다가 폐장 이후 문밖을 나선다. 많은 경우 투자금을 다 까먹고 난 뒤에야 매매방 생활을 끝낸다.
개미들의 ‘실패의 쳇바퀴’는 먼저 행동경제학으로 설명된다. 행동경제학 선구자 리처드 탈러는 이론의 핵심을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실패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향이다. 투자 성공률이 5%라는 말에 사람들은 실패한 95%보다 성공한 5%를 바라보곤 한다. 확증편향도 한 요인이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과 관련해 ‘호재’는 과대평가하고 ‘악재’는 낮춰보는 오류다. 확증편향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투자자가 더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손절’을 어려워하는 심리, 단타매매를 선호하는 경향은 실패의 쳇바퀴를 더 공고하게 한다. 무엇보다 실패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 게 문제다. ‘딱 이것만 고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부른다. 저자는 이 상황을 “주식시장은 개미의 피 같은 돈과 피눈물 나는 성찰을 빨아먹으며 자라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거듭되는 실패와 재도전에 온전한 답을 주지 못한다. 개인투자자들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책은 전업투자자의 대부분이 ‘4050의 중장년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좋은 학벌에 과거 국가경제의 발전을 이끈 번듯한 직장을 다녔지만 현재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한 이들이다. 아직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만 고정 수입은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주식으로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경제 호황기에서 ‘우리사주제도’를 통해 목돈을 만진 경우다. 외환위기 직후의 주식 상승장도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 맛’을 보여줬다. 전업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이때다.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 홈트레이딩시스템(HTS)만 있다면 어디서든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유인이다. 무엇보다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이 이들을 지배한다. 그래서 전업투자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언어로 인식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청년세대의 주식투자에 대해서도 짚는다. 저자는 청년세대 투자의 특징이 ‘존버’로 설명된다고 말한다. ‘장기 우상향’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돈 때문에 아쉽고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적은 돈이라도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벌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봤다. 또 “그렇게 해서 돈에 집착하지 않겠다, 더 엄밀히는 집착하지 않고 싶다!는 청년세대의 의지 발현”이라고 해석했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동국대 불교학과 재학 중 종교인류학 수업에 매료돼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저자의 석사논문을 보완한 책이다. 논문은 온라인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저자는 매매방에서 수개월 생활하며 투자자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했고, 그를 기반으로 생생한 인터뷰들을 담았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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