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청원] "동물방송, 지나친 의인화 말고 시청자 눈높이 맞춰야"

고은경 2021. 9. 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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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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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청원' 공감에 답합니다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JTBC '펫키지' 방송화면 캡처

"첫 반려견으로 세 살짜리 유기견을 지난해 입양해서 잘 키우고 있다. (방송이) 유기동물을 편견 있는 시각으로 본 것 같다."(nnn7****)

"내 인생의 모든 반려견과 반려묘는 보호소에서 데려오거나 직접 구조한 경우다. 아픔이 있기에 더 따뜻하고,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다. 철저하게 인간의 사고와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free****)

"처음 기르는 사람들이 발언을 듣고 유기견 입양을 하지 않는다면 안락사당하는 개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방송은 영향력을 미치기에 조심히 발언할 필요가 있다"(fall****)

JTBC 예능 프로그램 '개취존중 여행배틀-펫키지'(이하 '펫키지')에서 출연자 중 한 명인 김희철씨가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한테 유기견을 절대 추천 안 한다"라며 "왜냐면 유기견들이 한번 상처를 받아서 사람한테 적응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시청자들과 동물단체들은 유기견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요.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개밥 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웰시코기 삼둥이 '대, 중, 소'. 채널A 방송화면 캡처

이에 "유기견은 초보에게 비추천? 동물 이슈 신중히 다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보도(9월 3일)한 '애니청원'에서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동물 이슈를 다뤄줄 것을 요청했고, 563명이 한국일보닷컴과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감해주셨습니다.

수의인문학자인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와 최근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발간한 동물권행동단체 카라의 김나연 활동가로부터 미디어가 시청자들의 동물 인식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묻고 답해 드립니다.

JTBC의 예능프로그램 '펫키지'의 출연자인 김희철씨가 "강아지를 처음 기르려는 사람에게는 절대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해당 자막이 나올 당시 화면에 나온 몰티즈종 '경태'도 유기견이었다. JTBC '펫키지' 캡처

-이번 김희철씨의 유기견 관련 발언 내용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요.

"유기견이 상처를 받아 사람에게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린다는 발언은 동물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의인화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물론 반려동물은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의인화가 많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사람 사이 관계 맺는 방식을 반려동물과 사람의 관계에 똑같이 적용해선 안됩니다.

유기동물이든 아니든 동물은 같은 배에서 태어나도 성격이 다 다릅니다. 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동안 동물에 어떤 문제점이 발견됐어도 함께 맞춰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유기견은 상처 받은 동물이라 결함이 있고, 이는 사람과 관계 맺기가 어려우니 입양해선 안 된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유기견은 하나의 속성, 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각기 다른 개별적 존재입니다. 상처를 받아 사람에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건 잘못된 일반화입니다. 유기견 입양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해 유기견 입양한 사람을 칭찬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전문가들이 유기견 입양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근거를 제시하고, '유기견은~ 이렇다'라고 낙인을 새긴 점이 문제입니다."(김나연 카라 활동가)

'삼시세끼' 어촌편에 등장한 장모치와와 산체. 이후 장모치와와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tvN 제공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이 큰데 동물 이슈를 다룰 때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나요.

"사실 '유기동물=불쌍하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도 미디어입니다. 한쪽에서는 유기동물의 안타까움과 고통을 부각해서 공감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기동물은 결함이 있다고 표현하는 건 모순적이죠. 또 한쪽에서는 문제가 있는 동물만 출연시켜 교정해야 하는 존재로만 비추고 있습니다. 동물의 입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각에서만 접근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천명선 교수)

"2000년대 초반에는 닥스훈트와 샤페이, 2010년대에는 웰시코기, 최근에는 장모치와와와 보더콜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품종입니다. 방송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품종견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방송에 나온 품종은 방송 기간에는 수요 증가로 없어서 못 팔지만 1, 2년 뒤 보호소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김나연 활동가)

KBS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했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 상근이.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이 품종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이후 버려져 보호소에서 발견되는 품종이 됐다. KBS방송화면 캡처

-미디어에서 동물을 다룰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이제는 방송에서 연예인이 나와 귀엽고 예쁜 동물을 보여준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만족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 눈높이가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미디어 관계자들도 시청자들의 높아진 동물 감수성에 대해 공부하고 이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천명선 교수)

"카라는 최근 동물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습니다.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동물을 다루는 비중이 늘고 있는 가운데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의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동물을 콘텐츠에서 소품처럼 다루고 소비해선 안됩니다. 또 시청자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펫키지 논란도 시청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묻혔을 사안입니다. 시청자들이 침묵하지 않고 의견을 내는 게 중요합니다." (김나연 활동가)

-실제 처음 개를 키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나요?

"유기동물이든 아니든 동물은 다 다릅니다. 예컨대 학대를 받은 동물 가운데도 사람만 보면 좋다고 달려드는 개도 있습니다.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전문가들은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번식에만 동원하는 펫숍 산업의 고리를 끊기 위해 유기견 입양을 권합니다.

처음 키우는 분들의 경우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린 개체보다 보호소에 있는 성견, 성묘를 임시보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임시보호를 하면서 동물을 잘 키울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유기동물도 보호소가 아닌 가정에서 지낼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김나연 활동가)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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