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바깥의 회화..70대 작가의 '날개 단' 역주행

장재선 기자 2021. 9. 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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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건용(79) 작가의 작품 이야기다.

이 작가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 최고 블루칩으로 평가받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작가였다.

작품 제작과정을 담은 사진과 공연을 함께 보여주는 퍼포먼스 작가로만 치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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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작가가 화면을 보지 않은 채 선을 이어서 그림을 만들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 이건용 개인전 ‘Bodyscape’

전시 시작전 34점 모두 팔려

신체의 한계를 ‘예술’로 시연

‘아산 화상’ 김수열 대표 후원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건용(79) 작가의 작품 이야기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Bodyscape(신체의 풍경)’를 8일 개막했는데, 전시 시작 전 회화 34점이 모두 팔렸다. 드로잉 20점도 하루 만에 완판됐다.

이 작가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 최고 블루칩으로 평가받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작가였다. 작품 제작과정을 담은 사진과 공연을 함께 보여주는 퍼포먼스 작가로만 치부됐다. 그러나 그는 세간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신체의 풍경’ 연작을 줄기차게 만들며 묵묵히 자기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는 화면을 보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팔을 뻗어서 선을 그리는 동작으로 작품을 만든다. 평면을 보고 그 위에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 신체와 평면과 재료가 만난 현상”이라고 말해왔다. “회화 바깥에서 회화를 보겠다”는 게 그의 미술 철학이다.

이 작가가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기간에도 미술계 일각에선 그의 실험 예술이 세계 미술사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신체가 갖는 한계를 예술로 시연한다는 점에서 잭슨 플록 류의 행위예술을 진화시킨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이 작가의 줄기찬 작업은 마침내 국내외 미술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16년 갤러리 현대를 비롯해 국내 유명 화랑들이 그에게 전시 문호를 열었다. 2018년엔 미국의 세계 정상급 화랑인 페이스갤러리 베이징점에서 연 개인전이 큰 화제가 됐고, 이후 국내 경매 시장에서 인기가 치솟았다. 70대 작가의 ‘역주행’이었다.

이 작가는 젊은 시절과 다름없는 생산력으로 시장의 열기에 부응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갤러리현대 전시에 내놓은 회화 34점이 모두 신작이다.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그려 온 ‘신체의 풍경’ 연작이다. 종이 드로잉, 판화 작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온라인 사전예약제로 운영하며 10월 30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미술기획사 피카프로젝트는 아카이빙 전시회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작품과 기록들’을 7일 개막했다. 11월 27일까지 진행하는 전시는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재조명하며, 3D 가상현실(VR) 전시공간으로 재구성해서 온라인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화상(畵商)으로서 한때 작가의 후원자였던 김수열 아산갤러리 대표를 부각함으로써 작가와 화상, 수집가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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