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수익 단맛에 '증시 지옥' 빠지는 개미들
■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김수현 지음│민음사
소액 투자로 이득 본 개미들
‘필패의 질서’에 빠지는 과정
손실 최소화하려는 ‘물타기’
오히려 더 큰 손실 보는 계기
동학개미 현상 인류학적 접근
상승 이론에 대한 냉철한 분석
주식 권하는 사회풍조에 경종
“2021년 대한민국은 수익과 손실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청적(靑赤) 논리’ 사회다. ‘벌 수 있다’는 목소리로만 이뤄진 ‘주식 권하는 사회’의 달콤하고도 위험한 언설에서 깨어나야 한다. 실패 책임은 결국 ‘권하는 이’가 아닌 배운 것을 실천한 ‘개인’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는 주식 투자의 순기능만 부각하는 경영서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책이다. 2019년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최근 2030 청년세대의 투자 열풍을 추가 취재했다. ‘주식 매매방’에 입실한 전업 투자자 심층면담과 현장조사로 이뤄진 인류학 보고서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동학 개미’들이 처한 사회구조와 문화적 맥락을 분석한다. 석사 졸업 후 서울대 간호학과에 진학하며 특이한 이력을 쌓고 있는 1994년생 저자는 주식 자체를 문제 삼거나 투자자 행태를 비판하는 대신 참담한 ‘필패 서사’를 경유해 “주식시장은 계층상승 가능성이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절반의 낙원”이라고 말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개인 주식 투자자는 9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약 20%, 경제활동인구 중에선 30%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주식이 단순한 재테크를 넘어 “현대인의 낙(樂)이자 자기계발과 수련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단기간에 큰돈을 번 투자자들이 늘면서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기회를 잡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치부된다. 이렇게 너도나도 ‘경제적 자유’ 실현을 위해 주식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쓰디쓴 실패를 맛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개미들이 ‘필패의 질서’에 포섭되는 3단계 과정을 소개한다. 1단계는 ‘돈을 버는 단계’다. 초보자들은 보통 약간의 자본금만 투입하며 ‘밑밥’을 던져본다. 위험을 회피하고 확실한 우량주에 돈을 넣기 때문에 성공 사례도 꽤 나온다. 이 짜릿한 기억과 함께 ‘판돈이 올라가는’ 2단계가 시작된다. ‘내 투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악재 요소는 외면하는 ‘과신 편향’이 작동하는 단계다. ‘성공’ ‘이기는’ ‘승부사’ 등 희망적 단어를 조합한 서적들은 이런 편향성을 부추긴다. 3단계는 주가가 떨어져 ‘잘못된 투자’였다는 것을 인지한 후 ‘물타기’하는 과정이다. 많은 투자자는 주가가 하락해도 ‘손절매’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대로 돈을 끌어와 주식을 추가 매수한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타기가 오히려 손실을 증가시키는 불행한 결말의 전조가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3단계에서 작동하는 투자자의 심리를 잘못된 것을 알고 난 뒤에도 중단하지 않는 ‘몰입 상승 편향’과 손실 확정보다 이익 확정을 선호하는 ‘전망 이론’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적자 점포’를 정리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믿는 프렌차이즈 사업자들과 달리 유독 주식 투자자들은 손실 확정의 기로에 선 ‘적자 점포’를 유지하고 ‘흑자 점포’는 더 빨리 정리하는 모순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실패 3단계’를 뒷받침하는 것은 저자가 서울의 한 매매방에서 만난 중장년 전업 투자자들 사례다. 이들은 월 20만~30만 원의 자릿세를 내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해 주식을 사고판다. 독서실 분위기를 풍기는 사무실 책상엔 ‘매매원칙 십계명’ 등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저마다 배경은 다르지만, 이들은 ‘좋은 학벌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은퇴한 40~50대 남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근로자에게 자사 주식을 시장가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한 우리사주 제도 덕분에 ‘돈맛’을 보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파른 상승장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한 중년 남성들이 치킨집을 열듯 초기 비용과 진입 장벽이 낮은 주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하지만 손실이 커질수록 대다수는 ‘고(高)리스크-고(高)수익’ 주식이나 파생상품 등에 손대며 매매방 퇴실의 전철을 밟는다. 실제로 2007년 설립 이후 매매방을 거쳐 간 20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남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며, 고수익을 올리고 떠난 ‘슈퍼개미’는 5%가 채 안 된다.
최근 1~2년 사이엔 중장년뿐 아니라 청년층도 대거 동학 개미 대열에 합류했다. 월급만으론 집 장만도, 결혼도 힘들다는 것을 절감한 2030 세대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 내서 투자)’로 시장을 떠받친다. 청년층은 시간이 갈수록 주가가 오른다는 믿음을 지닌 ‘우상향 교도’들이며, 이들이 신봉하는 교리는 끝까지 버티면 성공한다는 ‘존버’다. 하지만 목돈 나갈 일이 줄줄이 기다리는 청년들에게 주식을 수십 년 동안 보유하는 ‘존버’를 가능하게 하는 여유 자금은 언감생심이다. 저자는 “존버가 불가능한 원인은 건드리지 못한 채 존버할 것을 되새기는 ‘청년 투자자 서사’는 결국 존버가 이행될 수 없다는 방증”이라고 꼬집는다.
개인 투자자들이 기관투자가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명한 대목은 다소 평이하게 다가온다. 또 에필로그에만 짧게 서술된 청년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민한 기획력과 불편한 얘기를 눈치 보지 않고 던지는 용기는 젊은 저자의 앞날에 기대를 걸게 한다. “주식 투자가 이유 불문하고 ‘열심히 해야만 하는 무언가’이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건 얼마나 위험천만한가”라는 문제의식에 수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52쪽, 1만6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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