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한잔이라도 고급스럽게..코로나 시대 '혼술' 끝판왕, 위스키
코로나로 인한 홈술·혼술족 증가 "한잔이라도 고급스럽게"
상대적으로 비싼 싱글몰트 큰 성장세, 대형마트서 6배 껑충
한번에 마시지 말고 나눠서 음미해야..스테이크와 궁합 좋아
“어둑어둑한 위스키 바의 은은함, 참 매력적이죠.”
장신해(32·여) 변호사는 자타공인 위스키 마니아다. 지금도 1주일에 서너번 서울 강동구 집 근처 바인 ‘바람’을 찾는다. 퇴근 뒤 위스키 한잔을 마시면 그날의 스트레스는 아웃. 위스키가 일종의 취미 생활이 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59.6%에 이르는 아벨라워 아부나흐. 위스키를 즐기다 보니 결국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싱글몰트(맥아로만 만든 위스키), 그 가운데 강렬한 캐스크 스트렝스(물이 첨가되지 않은 위스키)에 정착했다. 장 변호사는 “묵묵히 흐르는 시간이 주는 향이 좋다”라고 위스키의 매력을 말했다.
싱글몰트가 인기 견인
장 변호사처럼 최근 2030 여성을 중심으로 ‘위스키 바람’이 불고 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이솜)가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다”는 대사도 회자됐다. 사실 영화 개봉 전부터 이른바 엠제트(MZ)세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위스키 인기가 꿈틀대는 중이었다. <소공녀>는 그 인기를 반영한 셈. 영화를 찍었던 서울 내자동의 바 ‘코블러’에서 일했던 여성 바텐터 지향진씨는 “영화를 보고 위스키를 찾는 분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 전부터 젊은 여성들이 위스키를 많이 주문했다”며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의 경우 맛이 다양하고 개성이 강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도 위스키 인기에 한몫했다. 집에서 즐기는 홈술, 혼자 즐기는 혼술이 주류 문화의 대세가 되자, 자연스럽게 품질 좋은 위스키 쪽으로 시선이 쏠린 것. 특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기 좋은 싱글몰트의 상승세는 무섭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해 1~7월 위스키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81.9%가 늘었는데 싱글몰트 위스키는 481.1% 증가해 6배 가까이 많아졌다.
위스키 수입량은 줄어들었지만 수입액이 늘어난 것도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를 보여준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위스키 수입물량은 6800여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500여t에 비해 700t이나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 위스키의 가장 큰 소비처인 유흥주점이 휴업 상태인 탓이다. 하지만 수입액은 5천만달러에서 7600만달러로 오히려 늘었다. 홍준의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은 “일반 위스키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싱글몰트 위스키가 많이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족이 늘면서 한잔이라도 고급스럽게 마시자는 주류 문화가 퍼진 영향이다”라고 말했다.
음미, 또 음미하라
위스키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제대로 마시는 법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과거 한국에서 위스키는 ‘원샷’하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한잔을 쭉 들이켜며 호기를 부렸던 것. 이런 원샷 문화 때문에 대중은 위스키 자체의 맛과 향보다 부드러운 목 넘김에 집중하게 됐다. 부드럽지만 값비싼 고연산 위스키를 선호하는 풍토가 조성된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위스키야말로 와인 못지않게 음미하는 술이기 때문에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조언한다. <싱글몰트 위스키 바이블>의 저자인 유성운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 사무국장은 “위스키는 한번에 마시는 술이 아니다. 제대로 된 향과 맛을 느끼기 위해 스트레이트 잔에 30~40㎖를 따라 5~10㎖씩 끊어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마시기 전에 향을 음미하는 것도 필수 과정이다. 단, 도수가 강하기 때문에 코를 너무 가까이 대면 알코올 향이 코를 찌를 수 있으므로 주의. 바로 삼키는 것도 금물이다. 한 모금 천천히 입에 넣은 뒤 5초 정도 입에 머금고 다양한 향과 맛을 느껴보자.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바 M29의 신창호 헤드 바텐더는 “입안에서 음미할수록 향과 맛이 다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부담된다면 상온의 물을 소량 섞어 마셔도 좋다”고 말했다. 물이 섞이면서 숨어 있는 풍미가 살아난다고 한다.
위스키는 숙성하는 캐스크(나무통)의 재질과 방법에 따라 향과 맛이 좌우된다. 크게 셰리 와인(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보관했던 셰리 캐스크에선 과일 향이, 버번 위스키를 보관했던 버번 캐스크에선 바닐라 향이 난다. 향을 모아주는 글렌캐런(글렌케언) 글라스라는 위스키 전용 잔을 쓰면 더욱 좋지만, 없다면 얼음을 타 마실 수 있는 큰 온더록스 잔이 향을 느끼기에 좋다.
다 마시고 나서 잔 속 잔향을 즐기는 것도 빼놓지 말자. 이 향이야말로 위스키가 가진 본연의 향이다. 바에선 빈 잔을 바로 치우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직원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위스키를 끝까지 즐기라는 의미이므로 오해는 하지 말도록.
나에게 맞는 위스키란
자신에게 맞는 위스키를 찾아가는 여정도 큰 매력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위스키를 맛볼 수는 없는 법. 실력 있는 바텐더의 조언은 필수다. 위스키 초보자라면 “위스키를 잘 모른다. 추천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가장 위스키를 빨리 배우는 방법이다. 바텐더는 술을 모르는 이들에게 술을 알려주는 직업이기도 하다. 초보자들에겐 대부분 부드럽고 가벼운 맛의 위스키를 추천한다. 처음부터 너무 개성이 강한 위스키를 추천했다간 첫 경험이 마지막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 즐겨 마시는 음료나, 또는 와인의 맛을 기억해뒀다가 바텐더에게 말하면 비슷한 느낌의 위스키를 추천해줄 것이다. 대체로 부드럽고 편한 느낌을 좋아하면 블렌디드 위스키(여러 종류의 위스키 원액을 혼합한 일반적인 위스키)를,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맛을 좋아한다면 싱글몰트, 바닐라 향과 단맛을 즐긴다면 버번위스키(옥수수와 호밀로 만든 미국 위스키)를 추천해줄 것이다. 신창호 바텐더는 “위스키에 정답은 없다. 가격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다만 초보자라면 스카치위스키(스코틀랜드 위스키) 가운데 부드럽고 향긋한 롤랜드(로우랜드) 지역의 위스키부터 접하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남부 지역인 롤랜드(로우랜드)의 대표적 위스키로는 글렌킨치, 오켄토션, 블라드녹이 있다.
평소 맛이 궁금했던 위스키가 있다면 ‘시음’을 요청해보자. 적어도 전문적인 바텐더가 있는 바라면, 기꺼이 응해준다. 시음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위스키를 만났을 때 주문하는 매너는 잊지 말길.
중식하고도 잘 맞아
“위스키에 가장 좋은 안주는 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물은 위스키를 마실 때 필수다. 숙취를 감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입을 깨끗하게 헹궈내면서 위스키를 다시금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준다. 음식과의 페어링도 최근 많이 시도되고 있다. 가벼운 스낵 종류로는 견과류와 다크 초콜릿이 제격이다. 위스키 자체에 견과류와 초콜릿 향이 나는 경우가 많아 서로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승효과를 낸다. 주요리로는 뭐니 뭐니 해도 스테이크다. 스모키한 육향이 위스키에 녹아들면서 환상의 조화를 이뤄낸다. 일부 바에선 위스키를 시키면 고기 몇점을 구워 내주기도 한다.
고기를 기피하는 사람에겐 해산물로 만든 중식 요리가 제격이다. 센 불에 재빠르게 볶은 중국요리와 위스키는 고량주 못지않은 찰떡궁합이다.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총주방장 여경옥 셰프는 “신맛이 강하지 않다면 대체로 중식과 위스키는 잘 어울린다. 과거부터 고급 중식당에서 위스키를 판매한 이유가 있다”며 “해삼·전복 등이 들어간 전가복과 팔보채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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