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강을 품은 건지, 물이 산을 담은 건지..남양주 평해 정약용길 [여행]
[스포츠경향]
산은 흐르고 강은 감싼다. 역설이다. 이 역설은 역전이란 현실을 맞는다. 지난 7일 백로를 지나면서, 폭염의 심술로 인상을 짙푸르게 구겼던 산천은 늦장마의 끝자락에 이르러 초록의 빛을 부드럽게 폈다. 처서와 추분 사이에 낀 이 15번째의 절기는 새벽 기온을 이슬점 아래로 끌어내린다는 선조의 전언에 맞춰 폭염의 흔적마저 말끔히 지웠다.
걷기 더없이 좋은 계절,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연꽃마을과 팔당호 풍경. 주변에 조성된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은 고즈넉하게 계절의 오고감을 느끼기에 적당한 곳이다.
이제 신록으로 짙푸름을 다투던 침엽수와 활엽수는 계절이 깊어갈수록 제갈길을 달리할게다. 우리네 삶도 산천과 판박이다. 이들의 파노라마는 무심히 흐르는 남한강이 품는다. 강물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고운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을 따라 함께 걷는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고서 속 조선의 천재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드라마틱과 마주한다.
■정약용길 만나는 ‘상심낙사’의 의미
이 길은 지난해 12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경기옛길센터가 평해길이라 명명하며 문을 열었다. 평해길은 경기도 구리에서 양평을 잇는 경기옛길 중 하나다. 과거 한양(서울)과 강원도을 연결했던 관동대로를 깨운 셈이다.
평해길은 10개 구간(구리 1곳, 남양주 2곳, 양평 7곳)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3구간(제3길, 팔당역-봉안터널-연꽃마을-정약용 유적지-마재성지-능내역-운길산역 12.9㎞)은 다산 정약용의 흔적이 차고 넘친다.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옛 광주군 마현)는 이곳에서 나고 죽은 다산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최적지다. 그래서 마재옛길이자 정약용길로도 불린다.
경기옛길센터 역시 이 길을 ‘바잉포인트’로 내세운다. 이들은 이 길을 ‘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경관,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길’로 표현했다.
남양주 8경 중 1경은 정약용 유적지다. 사실 이 곳은 동네 이름을 다산으로 정하지 않은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다산로, 다산신도시, 다산생태공원…. 그의 호(號)가 널리 쓰이는 것처럼 정약용은 남양주의 전설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그가 주창한 목민(牧民)의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남양주시는 정약용길(평해길 제3길)에 앞서 다산길(삼패한강공원-운길산역 20.1㎞)을 조성했다. 정약용의 이름을 붙은 길은 실사구시(實事求是)다. 있던 길을 굳이 버리지 않았다. 옛 철길을 살펴 다산길, 정약용길, 남한강자전거길로 환골탈태시켰다.
시류는 옛것을 허물고도 남음이 있다. 이 구간 역시 그랬다. 2008년 중앙선 복선화로 철로와 역(능내역)이 폐쇄됐다. 그런 곳이 남한강자전거길로 되살아나더니 서울 근교에서 손꼽히는 하이킹과 라이딩 명소가 됐다. 접근성, 경관, 스토리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이어 철길의 추억은 봉안터널과 능내역에서 되살아났다.
■연꽃마을, 맑고 향기로운 다산의 정신
능내리는 팔당호와 이어진다. 북한강과 남한강, 경안천의 세 물길이 모여 고즈넉한 호반 풍광을 꽉 채운다. 연꽃마을에서 토끼섬 사이는 찬사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 중 백미다. 피어오르는 물안개, 들꽃의 향연, 물에 어린 산 그림자가 발길을 자꾸자꾸 잡아챈다. 여행객의 마음 역시 제 그림자에 놓칠 때가 많다.
연꽃마을에 앞서 꽃을 표현한 싯구 하나를 외우고 가도 좋다. 잊었다면, 이 마을 길섶어놓의 짧은 글귀를 놓치지 말길…. 조안면은 슬로시티다. 이곳에서 꺼뒀으면 하는 것은 ‘휴대폰’ 만이 아니다. 잠시 세상을 내려놔도 나쁘지 않다. 이 곳에 또다른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토끼섬을 오가는 길은 흙길이다. 푹신한 흙길이 포근하다. 이 길은 연꽃 재배지와 팔당호를 나눈다.
■아름다운 마재마을… 뜻 높은 마재성지
정약용 유적지는 생가(여유당), 다산기념관, 다산문화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맞은편에는 실학박물관이 있다. 생가 뒤편 언덕에는 정약용 부부가 함께 묻힌 묘소가 있다.
마재마을에 대한 표현은 김훈의 장편소설 ‘흑산’에 잘 표현돼 있다. 이 소설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조카사위 황사영 등 천주교를 접한 지식인들의 내면을 다뤘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을 들을 지나온 남한강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중략)북한강 물은 차갑고 남한강 물은 따스해서 두물머리 마재에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었다. 해가 떠올라 안개가 걷히면 강은 돌연 빛났고 젖은 산봉우리에 윤기가 흘렀다.”
마재마을은 정약용 4형제의 터전이다. 형제들은 서학과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셋째형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택했다. 둘째형 정약전과 넷째인 정약용은 함께 유배의 길을 떠났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생을 마쳤다.
마재마을에 천주교 성지가 조성된 배경이다. 마재성지는 이렇게 한 집안의 터전에 마련됐다.
걸으며 비우고 멈춰서 채우다보면 어느새 ‘상심낙사’에 이른다. 그 길이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이다.
글 강석봉 기자·사진 남양주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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