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마음을, 풍성해진 마음이 의식을 만든다
존재-느낌-앎으로의 진화 단계
항상성 명령이 의식 출현의 기원
몸과 마음의 합작이 의식 만들어
느끼고 아는 존재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 l 흐름출판 l 1만7000원
많은 사람들이 줄곧 인간만이 간직해온 오래된 비밀, 곧 의식(consciousness)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인간의 뇌 안에서 그 열쇠를 찾아왔다. 수조 개의 시냅스와 서로 연결된 수십억 개의 뉴런들로 이뤄진 뇌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작용이 어떻게 특정한 개인에게 연결된 주관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지가 핵심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워,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차머스(55)는 실제로 이를 “어려운 문제”(The Hard Problem)라 규정하고 현대 과학으로 이를 설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77)는 이 “어려운 문제”란 개념을 두고 “물음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뇌 안의’ 물리적 과정이 의식 경험을 왜 일으키는지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비록 뇌가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오직 뇌만이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증거는 없다”. 이 때문에 그는 뇌가 아닌 유기체의 ‘몸’과 그 속에 박혀 있는 비신경 조직에 주목한다. 몸과 신경계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느낌(feeling)이야말로 생명 유지를 위한 원초적인 작용이며, ‘의식이 있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핵심적인 기여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1994), <사건에 대한 느낌>(1999), <스피노자의 뇌>(2003)로 이어지는 ‘3부작’ 저작을 통해 감정, 정서, 느낌 등이 인간의 발달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는 점을 밝혀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신경과학자 겸 철학자로 꼽힌다. 2021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 <느끼고 아는 존재>는 그가 “복잡한 내용은 빼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만 다룬 책”으로, 세세하고 난해한 논증은 덜어내고 느낌에서 의식까지 아우르는 자기 이론의 알짬만 추려 담고 있다. 의식을 다루는 마지막 4장에서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직접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옮긴이가 책 첫머리에서 정리해뒀듯, 지은이가 쓰는 여러 용어들의 뜻에 유의하면서 읽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생명의 역사에는 존재(being), 느낌(feeling), 앎(knowing)의 세 단계가 있다고 본다. 모든 생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최적의 기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생리학적 범위 안에 유기체를 유지시키는 과정”, 곧 항상성(homeostasis)의 명령에 따른다. 존재의 차원에서, 생명은 항상성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비명시적 지능’(non-explicit competence)에 의존한다.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생물이 외부의 자극을 느끼고 피하듯 주변 환경과 다른 생명체를 감각(지각이 아닌)하고 이에 대해 자동적이고 효율적인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긴 진화 과정을 겪고 신경계가 형성된 다세포생물의 경우엔 이런 비명시적 지능뿐 아니라 ‘명시적 지능’에도 의존하게 됐는데, 지은이는 그 핵심이 바로 느낌이라고 본다.
느낌은 “유기체에서 다양한 항상성 상태들 다음에 발생하거나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마음속 경험”으로, 유기체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화학적 활동뿐 아니라 그런 활동이 신경계 뉴런들의 생물전기적 활동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에서 태동했다. 느낌은 우리 유기체의 부분 또는 전체가 순간순간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이미지로서 전달하며, 그것은 어떤 ‘질과 강도’의 표현을 통해 생명 조절 과정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척도로서 기능한다. 중요한 것은 “느낌은 신경계가 우리 내부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느낌은 몸에서 신경계로의 신호 전송을 담당하는 시스템(내수용감각)에서 별도의 매개 물질 없이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데에서 일어난다. 느낌의 이 같은 작용은 유기체 내부의 일관성과 응집도를 유지하도록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에 어떤 동기와 목적을 부여하게 만든다.
느낌이 제공하는 끊임없는 이미지는 유기체가 자신의 내부에서 사물과 행동을 공간적으로 지도화할 수 있는 장을 여는데, 그것이 마음이다. 지은이는 “마음이 풍성해진 상태가 의식”이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의식 있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느낌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특정한 시각 또는 관점이 핵심 구실을 한다. “의식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마음속 이미지들의 흐름에 마음의 소유주가 실제라고 느끼게 만드는 추가적인 마음속 이미지들이 첨가돼 구축된다.” 의식은 특정한 유기체와 마음을 확실하게 연결시키는 것으로, 말하자면 ‘내가 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니 만약 의식이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면, 로봇에게 인공지능이 아니라 항상성 명령에 따른 조절이 가능한 몸을 주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은이는 의식을 어떤 새로운 기능이나 독립적인 실체로 파악해왔던 기존의 접근법들을 비판한다. 의식은 결국 생명의 항상성 명령이 진화와 함께 변화되어온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명시적인 지능의 출현에 강력한 설계도를 제공한 것은 기존에 있던 비명시적인 지능이다. 느낌이 존재하고 주체가 식별되면 비로소 마음에 의식이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 있는 마음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것들은 경탄의 대상이고도 남는다. (…)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설명과 우리가 우리 유기체 안에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기본적인 장치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개체와 집단의 생존을 위해 오랫동안 사용해온 장치들이 변형되고 업그레이드돼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또 “(항상성 요구를 따르는 생명 상태의) 우선순위를 인정하고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면 인간이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들에 가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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