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이씨 가문의 겸인(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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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양반으로 행세하기 위해 남의 집 족보를 잘 알아야 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 가문의 '청직이' 곧 겸인(傔人)이다.
이만수 가문은 집안 겸인의 절반 이상을 재정관서에 서리로 꽂아 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벌열가문에서 겸인을 재정관서로 꽂아 넣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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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양반으로 행세하기 위해 남의 집 족보를 잘 알아야 했다. 곧 보학(譜學)이라 부르는 이런 지식은 양반의 기본 교양이기도 했다. 오늘 보학 공부를 한번 해 보자. 공부거리는 조선후기 소론 벌열(閥閱)로 이름난 연안이씨(延安李氏) 집안의 족보다.
이정신이란 인물이 있다. 호조참판·도승지·경기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아들 둘이 유명했는데, 첫째는 이철보(병조판서·좌참찬), 다음은 이길보(도승지·대사간)다. 이철보의 아들은 이복원(우의정·좌의정), 이복원의 아들은 이시수, 이만수(대제학, 병조·호조 판서)다. 또 이길보의 아들은 이성원(우의정·좌의정)이다. 좀 복잡하지만 모두 이정신의 증손대까지다. 이름 뒤 괄호 안에 이들의 관직을 써두었는데 어마어마하다. 대제학, 좌의정, 우의정, 병조판서, 호조판서가 즐비하다. 이런 집안을 이른바 ‘벌열’이라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 가문의 ‘청직이’ 곧 겸인(傔人)이다. 겸인은 일종의 가내비서(家內祕書)다. 1809년 이만수는 자기 집안 겸인을 불러 시회(詩會)를 열었는데,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은 작품으로 <음정축>(陰庭軸)이란 시집을 엮는다. 이만수는 <음정축> 앞에 서문을 써주는데, 시회에 참석한 겸인이 어떤 관청에 서리로 있는지 밝혀 놓았다.
이철보의 겸인은 유광진·정계문 둘인데, 전자는 규장각, 후자는 상의원 서리다. 이길보의 겸인은 전백령·이형수인데, 전자는 선혜청, 이형수는 미상이다. 이복원의 7명 겸인 중 김신성은 선혜청, 고천의는 호조, 신재청은 의정부, 신지흠은 비변사, 유상우는 규장각 서리다. 이성원의 겸인은 8명인데, 박세일은 호조, 박세득·이진완·장두추는 어영청과 금위영, 한종석·김치덕·유일진은 호조, 김진하는 병조 서리다. 이시수의 윤인환 이하 5명의 겸인, 이만수의 김진악 이하 6명은 모두 호조 서리다.
<음정축>은 모두 30명의 겸인을 싣고 있는데,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8명은 예외 없이 모두 주요 관서의 서리다. 하나 특이한 것은, 28명 중 14명이 호조 서리라는 것이다. 호조는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서다. 선혜청 서리는 2명인데 선혜청 역시 대동미(大同米)·대동포·대동전의 출납을 관장하는 재정관서다. 나머지 병조와 어영청과 금위영도 재정과 관련이 있지만,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다. 호조와 선혜청 서리를 합하면 16명인데, 이것은 28명의 57%다. 이만수 가문은 집안 겸인의 절반 이상을 재정관서에 서리로 꽂아 넣고 있었던 것이다.
서리직은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그 거래하는 돈은 ‘전수전’(傳授錢)이라고 한다. 예컨대 19세기 중반 호조 서리는 2천 냥에 거래되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벌열가문에서 겸인을 재정관서로 꽂아 넣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것은 이만수 가문만 했던 짓도 아니었다. 모든 중앙관서는 사실상 벌열가문의 겸인이 서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고, 이들은 상호간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소수 벌열가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건너뛰어 묻는다. 오늘날 정계와 관변(官邊)에서 출신지역을, 특정 대학을, 합격기수를 따지며 한데 엉겨 붙는 것은 혹 이 타락한 문화의 연장이 아닌가? 아니기를 빈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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