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보 뒤편을 보라..'대중의 분노'가 있다

조용철 2021. 9. 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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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인류 정신사의 수원지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첫 줄에서 이미 분노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분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에서 보여주듯 분노는 지금껏 인류 역사가 펼쳐져 오는 동안 좋게든 나쁘게든 세계 변화의 원동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위대한 인류의 진보 배후에는 언제나 일반 대중의 분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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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 톺아보기] 번역가 석기용 성신여대 교수가 말하는 '분노란 무엇인가'
화난 아킬레우스가 이끈 트로이 멸망
분노는 인류 역사 변화의 원동력
분노할 때 침묵하는 사람은 비겁자
적절한 대상과 최적의 수단 깨달아야
분노란 무엇인가/바버라 H 로젠와인/석기용 번역/ 타인의사유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인류 정신사의 수원지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첫 줄에서 이미 분노가 언급되고 있다. 감정이란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말로 분명히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될 때 비로소 가장 분명하게 하나의 감정으로 인정되는 법이라고 하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분노는 우리 인간이 가장 이른 시기에 익숙해진 보편적 감정이라 보아도 무방한 셈이다.

알다시피, 실제로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려가는 결정적인 방아쇠 구실을 했다. 제 분노를 못 이긴 아킬레우스의 과도한 처사가 제 죽음을 재촉했고 그는 결국 죽어서 우리 몸의 어떤 부위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마비되어 평소답지 않은 믿기 어려운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범행 당시의 상황을 묻는 말에 너무 화가 난 상태라서 그때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대답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말이 그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려는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가끔 너무 화가 나서 심한 언쟁을 벌인다든가 하고 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중에 도통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이를 보면 분노는 잘 다스리고 억제할 대상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분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에서 보여주듯 분노는 지금껏 인류 역사가 펼쳐져 오는 동안 좋게든 나쁘게든 세계 변화의 원동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위대한 인류의 진보 배후에는 언제나 일반 대중의 분노가 있었다. 분노하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도 없고,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비겁자다. 그리 보면 무작정 분노를 억누를 일만도 아닌 것 같다. 결국 그렇다면 정당한 이유에서 올바른 대상에게 최적의 수단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만큼의 분노를 행사하는 것이 정답이라 할 텐데, 무엇이 정당하고, 올바르고, 최적이고, 꼭 필요한 것인지는 또 어찌 판단해야 할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자인 바버라 로젠와인의 '분노란 무엇인가'는 분노 감정의 이런 복잡다단한 양상을 문화사적인 시각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어쨌든 세상에는 언제나 화낼 일이 즐비하고 아마도 대다수 사람이 평생 느끼는 분노 감정의 총량은 그 어떤 감정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막연히 분노를 억압하거나 떠받들 게 아니라 분노의 실체에 대해 더 잘 알아 두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저자가 보여주는대로 분노 감정이 다양한 정서공동체마다 어떻게 달리 받아들여졌는지 살펴보고 나면 내 주변에서 분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처할 때도 더 잘 수완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번역가·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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