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애의 GPS] 언론 제보자가 모두 공익 신고자 될 수는 없다

권경애 변호사·'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저자 2021. 9. 10.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與 인사 고발 사주' 의혹으로 시끌
언론 제보자, 공익 신고자로 보호 안 되는 건
공익신고 보호제도 악용 못하게 막으려는 것
美 이라크전 정당성 논란 부른 '리크 게이트'도
정치 공작 vs 공익 제보 공방으로 본질 가려져

밖으로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국제 정세가 혼란스럽다. 안으로는 신생 언론 매체의 보도를 둘러싼 정치 공방이 격하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9월 2일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했다. 2020년 4월 3일 당시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여권 인사들을 고발해 달라고 고발장 등 자료를 전달했다는 제보를 기사화했다. 보도는 손준성 검사의 고발 사주는 윤석열 총장의 지시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집권 여당은 윤석열 검찰이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고 야당과 야합한 검찰 쿠데타라고 공격하고 있다. 의혹의 과녁인 윤석열 후보 측은 정치 공작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맞받아쳤다.

시계를 돌려보자. 20여 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언론과 정치 관계에 관한 어두운 경험을 하게 했다. 2001년 미국은 9·11 테러에 개입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인도 요구를 거절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후, 2002년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CIA가 제기한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제조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파견된 조사관 조셉 윌슨은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윌슨은 2003년 7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해 이라크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은 윌슨이 정부를 악의적으로 공격한다면서, 윌슨의 아내가 CIA 비밀 요원이라고 폭로했다. 부시 정권의 도덕적 파산을 알리는 리크게이트(Leak Gate)의 시작이다. 노박이 비밀 요원 신분 누설 행위로 인한 중벌을 면하기 위해 취재원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타임’의 매슈 쿠퍼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가 드러났다. 밀러는 비밀 요원 정보를 전달받은 취재원 공개 요구를 거부하고 감옥행을 택했지만, 쿠퍼는 이라크 전쟁을 지휘하는 백악관 부비서실장 칼 로브와 딕 체니 부통령실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가 취재원임을 밝혔다.

사안은 ‘취재원 보호와 언론의 자유’에서 ‘정치 공작과 언론의 유착’ 문제로 전환됐다. 밀러는 ‘취재원 비닉권(秘匿權) 수호자’의 명예를 잃었다. 밀러도 정부에서 정보를 받고 이라크 전쟁 옹호 기사를 써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도 정치 공작에 이용된 언론의 책임을 사과했다.

뉴스버스는 고발장 등 자료를 공개했다. 제보자의 휴대폰에 저장된 텔레그램 이미지 파일 형식이었다. 김웅 의원과 통화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피고발인 13명의 범죄 사실은 크게 두 갈래였다. MBC가 2020년 3월 31일 보도한 소위 ‘검언 유착’ 의혹 보도를 전후로 한 유시민, 제보자 지모, 최강욱 등의 발언과 뉴스타파가 2020년 2월에 보도한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보도는 허위 사실로서 윤석열 총장과 한동훈과 김건희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김웅 의원이 8일 오전 기자회견에 나섰다. 뉴스버스가 공개한 20장 분량의 4월 고발장 말고도 미래통합당이 2020년 8월에 실제 고발한 8장 분량의 고발장이 더 있었다. 최강욱 당시 변호사가 조국 전 장관 아들이 실제 인턴 활동을 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고발장이다. 김 의원은 자신이 8월 고발장의 기초 논점 메모를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에 전달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20장 분량의 4월 3일 자 고발장에 대해서는 손준성 검사에게 받은 사실도 제보자에게 전달한 사실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와 정점식 법률지원단장도 4월 3일 자 고발장이 미래통합당에 접수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의 기자회견으로도 의혹은 여전히 그대로다. 경우의 수는 둘이다. 김웅 의원이 손준성 검사에게 받은 사실을 감추거나, 손준성 검사에게 받은 사실이 없거나. 전자라면 김웅 의원은 조국에 버금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손준성 검사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받은 즉시 전달했다 해도 사전 사후 연락이 없을 수 없고, 기억 못 할 수 없는 사안이다. 후자라면 제보자 또는 제보자를 사주한 정보 조작이고 정치 공작이라는 뜻이다. 김웅 의원은 제보자의 조작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뉴스버스 측은 전날 제보자가 공익 신고자로 전환되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대검 감찰부(부장 한동수)는 김 의원의 기자회견이 열리기 직전에 제보자가 공익 신고자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김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윤석열 후보도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제보한 사람이 어떻게 공익 제보자가 될 수 있는지 강하게 질타했다. 곧이어 공익 제보 업무 관할 기관인 국민권익위는 관련한 공익 신고 신청이 접수된 바 없다고 발표했다. 공익 신고자 보호법에는 신고 대상 공익 침해 행위와 공익 신고 기관을 정해 놓고 있다. 언론 제보자는 원칙적으로 공익신고자로 보호되지 않는다. 이는 공익 제보를 위장한 정치 공작자와 이용당한 언론이 공익 신고자 보호 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책이기도 하다.

한편 정치 공작과 공익 제보를 둘러싼 혼탁한 공방은 정작 핵심을 가리기도 한다. 리크게이트의 혼탁함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본질적 문제 제기를 가렸다. ‘고발 외주’ 의혹을 둘러싼 정치 공작과 공익 제보의 혼탁한 정치 공방 속에서 2020년 4월 3일 고발장에 담겨 있는 검은 ‘검언 유착’ 음모와 날조에 대한 정치적‧법적 책임 판단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