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거리 흡연, '이 시국'에도 해야 합니까

채민기 기자 2021. 9.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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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상습 흡연으로 인한 민원 다발 지역입니다. 모두를 위하여 금연해주세요!”

읍소인지 경고인지 애매한 보건소 안내문을 비웃듯 길가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서울 세종대로 파출소 앞길이 그냥 흡연도 아닌 ‘상습 흡연’ 거리가 된 것은 아마도 쓰레기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자리엔 요즘 길에서 보기 힘든 쓰레기통이 있었다. 쓰레기통 주변은 원래 흡연 구역이라는 듯 사람들이 둘러서서 담배를 피웠다. 언젠가 쓰레기통이 철거됐지만 흡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길목 전체가 흡연실처럼 돼버렸다. ‘민원 다발 지역’을 특별히 크고 빨간 글씨로 강조한 걸 보면 질색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인 가운데 7월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폐쇄된 흡연 부스 앞에서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기호품으로 담배를 즐기는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KF94 마스크를 비집고 들어오는 연기는 별로 존중하고 싶지 않다. 길에서 담배 냄새를 맡게 될 때면 묻고 싶어진다. 냄새가 통한다면 바이러스는 괜찮은가? 담배 피우면 침을 바닥에 탁탁 뱉어도 되나? 거리 흡연은 마스크 착용 열외인가? 거리 흡연에서 이제 불쾌함을 넘어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광화문역 6번 출구 앞 길바닥엔 흐릿해진 ‘지하철역 10미터 이내 금연’ 안내 문구가 있다. 3미터도 5미터도 아니고 자그마치 10미터라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서울시가 시내 모든 지하철역 출구부터 10미터를 금연 구역으로 정한 것이 2016년 4월, 전국 공공기관·의료기관 시설 전체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건 이보다 앞선 2012년 12월이었다. 음식점, 술집, PC방…. 간접 흡연 관련 뉴스는 대개 어디어디가 새로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다는 내용이다. 이 땅에서 담배를 영영 몰아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반면 길거리를 비롯한 실외 공간 대부분은 여전히 무풍 지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비흡연자인 나는 금연 구역 못지않게 흡연 구역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연 구역 아니면 어디서든 담배를 피울 게 아니라, 흡연 구역 아닌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흡연에 관대하다는 일본도 2001년 도쿄에서 한 어린이가 행인의 담뱃불에 실명한 사건을 계기로 대부분 지자체가 거리 흡연을 금지했다고 한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한 게시물 중에 ‘강한 자만이 살아남던 시대’라는 게 있다. 올림픽대로 무단 횡단이나 야구장 오물 투척처럼, 돌아보면 무법천지라고밖에 할 수 없는 한국의 1980~90년대 풍경 가운데 대중교통 흡연이 있다. 버스에 탄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뒷자리 여성은 얼굴을 찡그린다. 지금 우리는 이 동물의 왕국과도 같던 시대를 지나 어디쯤 와 있나.

대중교통 흡연은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면서 금지됐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버스에서 담배를 물지 않는 것은 경찰에 잡혀갈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시민 의식이 성장하면서 그것이 상식으로 뿌리 내린 것이다.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하지만 그다음은 상식 영역이다. 타인의 날숨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 코로나 시대. 이 엄중한 시국을 간접 흡연에 대한 상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힘겨운 팬데믹의 가운데서 건져낸 작은 보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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