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바람구멍
[경향신문]
산책길에서 산등성이 사이로 바람구멍처럼 트인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서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소공포증과 공황장애, 폐쇄공포 같은 증세로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예전에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해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정신이상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하기도 했다. 세상에 적응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즉 이분법적인 구분이었다.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낙오자로서 세상의 멸시와 냉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인식이 바뀌어 사람이기에 겪게 되는 질병으로 이해하고 인정해주려 한다. 누구나 다소나마 그런 증상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때때로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는 공포를 느끼며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남이 보면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어디 나만 이러랴.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제 매일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고, 앞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알 수조차 없다. 마음을 이끌고 어디를 다니기도 어렵고 친지들과의 모임도 자중해야 한다. 이 정도면 폐쇄공포증세가 늘어날 만한데 아직 그런 환자의 증가 보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놀라운 인간의 적응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먼 곳 산등성이의 바람구멍 앞에서 큰 숨을 내쉬어본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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