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건 노조가 아니다

곽래건 기자 2021. 9. 10.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월 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택배대리점주 A씨의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노제를 지내며 마지막 배웅을 하고 있다. A씨는 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강호 기자

김포의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40)씨가 숨진 지난달 30일 저녁,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방에서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친한 형님이 노조 괴롭힘에 목숨을 끊었는데,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통화 내내 울고 있었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유서에 다 적혀 있다”고 하기도 했고, 이미 몇 달 전부터 민노총 택배노조가 대리점 소장들을 괴롭혀 고사시키는 전략을 쓴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숨진 이씨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6세 세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살아 대리점 소장까지 됐고, 만 40세로 나이도 젊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노조 괴롭힘이 심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취재를 할수록 그 의문이 풀렸다. 노조원들이 ‘정당한 노조 활동’이라면서 집요하게 이씨를 괴롭히고 비방한 증언·증거가 끝도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괴롭힘을 자세히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다른 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학교 폭력과 판박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노조는 이씨를 도운 비노조 기사들도 집요하게 괴롭혔다. 비노조 기사들도 이씨를 돕는 것을 하나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직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에서는 “(이씨는) 월 5000만원을 버는 비리 소장”이라는 노조원 주장이 여과 없이 나갔다. 세상에 자기편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노조 횡포가 심해지자 이씨는 아내에게 가끔씩 “택배 때려치우고 다른 데 가서 다른 일 하면서 살자”고 했다고 한다. 하루는 밤늦게 집에 와서는 “도망가려다 당신과 애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가려고 왔는데 얼굴 보니 눈에 밟혀 도망 못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지난달 30일 아내에게 “집에 먼저 가 있으라”고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런데 이후 노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씨가 유서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노조의 집단 괴롭힘’이라고 똑똑히 적어놨는데도 이를 부인했다. 가해자인 노조는 자체 조사 결과라며 “이씨가 채무가 있었다” “왜 모든 책임을 노조에만 돌렸을지 의문”이라고 발표했다. 숨진 이씨에게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계속 거짓말로 사태를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언론 탓도 하기 시작했다.

각종 불합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조는 필요하고, ‘노동 존중’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숨진 이씨도 노조가 세워진 처음에는 “노조가 나쁜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갈궈야 합니다. 지랄해야 합니다. 그게 노조입니다”라고 했다. 이건 노조가 아니다. 조폭이나 학교 폭력 일진 같은 폭력배일 뿐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