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총재 "유럽, 물가 뛰고 경기 호조..채권 매입 줄여야"

조재길 2021. 9. 10. 02: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일 통화 정책 회의서 "기준금리는 동결"
자산매입 속도 "月 800억→최대 700억유로"
미 Fed 테이퍼링 결정에도 영향 미칠 듯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동안 진행해온 자산 매입 속도를 다소 늦추기로 했다. 유럽 물가가 지난달 10년래 최고치로 치솟은데다 경기 상황도 최악은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9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통화 정책 회의를 연 결과 현행 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되 채권 매입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ECB의 기준금리는 제로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시장 예상대로다.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연 -0.50%와 0.25%에서 바뀌지 않는다.

다만 작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충격 직후 도입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채권 매입 속도를 올해 1~2분기보다 늦추기로 했다. 최소한 내년 3월 말까지 1조8500억달러의 채권을 매입한다는 큰 틀은 유지하되, 매달 사들이는 채권 규모를 줄이겠다는 의미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 내 자금 조달 여건과 물가 전망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채권 매입 속도를 지난 2개 분기보다 다소(moderately) 늦추더라도 우호적인 금융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CB는 올해 1~2분기에 매달 800억유로씩 채권을 매입했는데, 향후 월 600억~700억유로 수준으로 매입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는 게 로이터통신의 설명이다.

앞서 ECB는 지난 3월 델타 변이 확산 등의 영향으로 채권 매입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 이후 6개월 만에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로 지역 경제는 분명히 반등하고 있다”며 “2분기 2.2% 성장한 데 이어 3분기에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 성인의 70%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친 게 영향을 끼쳤다”며 “다만 추가 회복 속도는 감염 확산 및 백신 접종 상황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ECB는 목표물장기대출프로그램(TLTROⅢ)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지속하고 자산매입프로그램(APP)도 월 200억유로 규모로 유지하기로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결정이 “자산 매입액을 줄이는 테이퍼링이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의 명언을 인용하며 “그 여성이 (테이퍼링으로) 돌아선 게 아니다(The lady’s not for turning)”고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9일(현지시간) 배포한 통화정책 회의 결과. '자산 매입 속도를 늦추겠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채권 매입액 규모를 줄이는 게 아니라 매입 시점을 조금씩 늦출 뿐이란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리한 자금조달 여건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권 매입 속도의 눈금을 만장일치로 조정한 것”이라며 “향후 방향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테이퍼링에 대해 선을 그렀지만, 시장에선 ECB가 사실상 긴축 전환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채권 매입 시기를 늦춘 건 매입액 자체를 줄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란 얘기다.

특히 유럽 내 물가가 급등세를 타고 있어 ECB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존 19개 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 3%(작년 동기 대비) 급등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물가는 28년만의 최고인 3.9% 치솟았다. 

ECB는 올해 유로존의 성장 전망을 종전 4.6%에서 5%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은 4.7%에서 4.6%로 0.1%포인트 낮췄다.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연말 2.2%, 내년에 1.7%, 2023년에는 1.4%를 각각 기록할 것이라고 봤다. 올해 말의 물가 전망은 종전 대비 0.3%포인트 높은 수치다.

현재 ECB가 정해놓은 물가상승률 관리 목표치는 2%다. 종전 목표치가 ‘2% 바로 아래’였는데 최근 2%로 18년 만에 상향 조정했다.

투자회사인 프린시펄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시마 샤 수석전략가는 “이번 ECB의 조치는 테이퍼링을 향한 의미있는 행보”라며 “미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 속도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ECB가 테이퍼링을 향한 첫 발을 내디디면서 미 Fed의 조기 긴축 움직임을 강화시켜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유럽의 주요 증시는 혼조세로 마감했다.

프랑스 CAC40지수는 0.24% 오른 6,684.72, 독일 DAX지수는 0.08% 상승한 15,623.15로 거래를 마쳤다. 반면 영국 FTSE100지수는 1.01% 내린 7,024.21,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50지수도 0.04포인트 내린 4,177.11로 각각 장을 마쳤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경제지 네이버 구독 첫 400만, 한국경제 받아보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