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소금 넣었다더니.. 소주가 쓰지 않고 다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9.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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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맛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

분자요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스페인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Adria)는 “소금은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이라고 말했습니다. 소금이 음식의 맛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거죠. 아드리아의 말에 절감하는 경험을 최근 소주를 통해 하게 됐습니다.

◇ 소금으로 쓴맛 잡은 보해소주

당연한 말이지만 소주는 씁니다. “그 맛에 마신다”는 주당(酒黨)도 많지만, 대부분은 소주의 쓴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로 마시는 희석식 소주에는 쓴맛을 완화하기 위해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요. 단맛으로 쓴맛을 잡겠단 거죠. 그런데 단맛이 아닌 짠맛으로 쓴맛을 잡겠다는 역발상을 적용한 소주가 등장해 애주가들 사이에서 화제입니다.

전남권을 대표하는 소주업체인 보해양조가 최근 출시한 ‘보해소주’입니다. 전남 신안에서 생산되는 토판염(천일염), 히말라야 핑크 솔트,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안데스 레이크 솔트 등 3가지 소금을 넣어 쓴맛을 잡았다는 겁니다. 과연 사실일지, 어떤 맛일지 궁금했습니다. 보해소주를 어렵게 구해 애주가 몇 분과 함께 시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놀랍게도 쓰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쓴맛이 매우 약합니다. 그렇다고 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단맛이 살짝 올라오더군요. 마신 뒤 입안에 별다른 맛이 남지 않는 게 물 같더라고요. 소주 마니아라면 오히려 ‘싱겁다’며 반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백 라벨을 보니 알코올도수는 16.8도로 ‘참이슬 후레쉬’(16.5도)와 비슷합니다. 인공감미료(스테비올배당체)가 첨가된 건 다른 희석식 소주와 같습니다. 소금이 유일하게 차이 나는 원재료이죠.

보해양조 관계자는 “기존 소주는 쓴맛을 잡기 위해 당 성분을 넣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콩국수 이야기를 하더군요. “광주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을 넣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콩국수에 소금을 넣잖아요. 이처럼 소주도 꼭 단맛만 쓸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죠.”

소금 넣은 소주를 마셔도 건강에 괜찮을까요? 보해양조 관계자는 “소금을 얼마나 넣었는지 정확한 양은 밝힐 수 없지만, 내부적으로도 ‘나트륨이 건강에 나쁜데 넣으면 되겠느냐는 의견이 제기됐고, 쓴맛을 줄이는 데 필요한 만큼으로 최소화했다”고 했습니다.

소금을 넣어 쓴맛을 잡은 '보해소주', 보해소주 포스터, '소금, 지방, 산, 열'에 소개된 소금 달력. /보해양조, 세미콜론

◇ 모든 맛 들어있는 소금

식품·조리 전문가들은 “소금은 음식에 짠맛을 주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풍미를 높여준다”고 입을 모읍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맛 이야기’(행성비)에서 “소금은 쓴맛을 없애주고 이취는 줄이며 단맛을 강하게 하고 향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나쁜 맛은 감춰주고 좋은 맛은 더욱 도드라지게 해준단 것이죠. 그는 “무작정 소금을 줄이면 맛의 중심이 사라져 다른 모든 맛과 향이 시들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노봉수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맛의 비밀’(예문당)에서 “소금에는 쓰고 시고 달고 매운 맛이 모두 다 들어있으며, 짜다는 말은 그런 여러 가지의 맛이 잘 짜여 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을 혼합해보면 짠맛이 나온다. 따라서 소금만 잘 사용해도 다른 어떤 종류의 양념이나 향신료를 넣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소금은 진정한 맛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요리사이자 음식작가인 사민 노스랏(Nosrat)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도 큰 인기를 얻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금, 지방, 산, 열’에서 “소금 간이 맞지 않는 음식은 제아무리 화려한 기법이나 고명을 동원해도 맛있게 만들 수가 없다”며 “이 책에서 딱 한 가지 교훈을 간직한다면 ‘소금은 다른 어떤 재료보다 맛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합니다.

◇ 커피, 초콜릿에도 뿌려 보자

그렇다면 소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일부 전문가는 ‘고정관념을 깨보라’고 권합니다. 노봉수 명예교수는 “커피를 먹을 때면 누구나 설탕을 타서 쓴맛을 단맛으로 바꾼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설탕 대신에 소금으로 대체하더라도 결코 짠맛을 느끼지 않으면서 단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노스랏은 “소금을 제대로 활용하면 쓴맛을 최소화하고 단맛의 균형을 잡으며, 풍미를 더하고 음식을 먹을 때 우리의 경험을 향상시킨다”고도 했습니다. “아주 가는 바다소금을 살짝 뿌린 진한 에스프레소 브라우니를 한입 베어 먹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 작은 소금 덩어리가 씹히는 즐거움과 더불어, 에스프레소의 쓴맛은 약화되고 초콜릿의 맛은 강렬해진다. 동시에 설탕의 단맛과 대비되는 좋은 짠맛을 느낄 수 있다.”

뭐든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죠. 당연히 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을 때의 나쁜 맛은 짠맛이 아니라 쓴맛이라네요. 최낙언 대표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 2013년 2월 28일자에 실린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과도한 짠맛일 때 뇌에 쓴맛과 신맛의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경로가 활성화되어 불쾌한 짠맛의 정보로 해석된다”고 썼습니다.

소금을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 그 적정량이란 게 참 어렵습니다. 노스랏은 간하지 않은 수프나 육수에 소금을 조금씩 더하면서 계속 맛을 보며 간에 대한 감을 익히라고 조언합니다. “간이 안 된 육수에 소금을 첨가하면 그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향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소금을 더하면서 맛을 보면 소금의 맛과 함께 닭의 감칠맛, 지방의 풍성함, 셀러리와 타임에서 나는 흙내음 등 더욱 복합적이고 기분 좋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징!’ 하는 느낌이 올 때까지 소금을 첨가하면서 맛을 보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소금으로 ‘맛을 내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사민 노스랏이 쓴 '소금, 지방, 산, 열'에 나오는 소금 달력. 식재료별 소금 간 하기 최적의 시점을 소개했다.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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