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연기한 결혼식, 식사없이 99명까지만?" 예비부부들 화환시위
‘예식장에만 출몰하는 코로나’ ‘빛나지 못한 결혼식, 빚만 가득할 결혼식’....
9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의 세종로공원. 도심 한복판 공원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화환 30개가 설치됐다. 이를 설치한 것은 4500여 명의 예비 신혼부부들로 구성된 전국신혼부부연합회다. 원래 정부청사 앞에 놓으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100m쯤 떨어진 공원에 대신 설치했다.
30대 젊은 예비부부가 주축인 이들은 지난달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서울 도심에서 ‘전광판 트럭’을 동원한 시위를 벌였다. 또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에 매일 3000~4000개의 항의 팩스를 보내는 ‘팩스 시위’도 벌이고 있다. 이어 휴가까지 내고 정부 청사 앞으로 찾아와 ‘화환 시위’도 연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 유치원 교사 등 이날 모인 8명의 젊은 예비부부들은 “예비 신혼부부들은 수백, 수천만원의 위약금을 지불하며 결혼식을 미뤄 왔는데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방역 지침만 강요하고 있다”고 외쳤다.
정부는 지난 3일 거리 두기 4단계에서 당초 49인이었던 참석 가능 인원을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99인’으로 늘려줬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정부가 나서서 예비 신혼부부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원을 일부 늘려주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비부부들은 면적·규모를 고려해 참석 인원을 조정하는 다른 다중이용시설과 달리 유독 결혼식장만 49인, 99인 등 일률적인 지침이 적용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예비 신부 이모(31)씨는 작년 12월 예정됐던 결혼식을 올해 3월과 10월로 2차례나 미뤘다. 이 과정에서 결혼식장 위약금 200만원을 포함해 300만원을 날렸는데, 또다시 연기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10월이 되면 전 국민의 70%가 백신 접종이 완료된다고 여러 차례 말해, 그 말만 믿고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기 위해 참아왔다”며 “비용을 떠나 결혼을 앞둔 당사자들이 왜 가족과 친구들에게 죄송하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예식장에서 기존에 예약한 보증 인원을 변경해주지 않는 것 역시 불합리하다고 예비부부들은 말한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손모(28)씨는 “1년 전에 보증 인원 250명으로 식장을 예약했는데, 예식장이 인원 조정을 해주지 않아 99인이 참석하더라도 남은 150명에 대한 비용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예식장은 오지 않은 인원만큼 답례품을 구매하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비 신랑 남모(37)씨는 “이미 300명을 초대하기로 해 어쩔 수 없이 웨딩홀 측에 취소 문의를 했더니 기존 프로모션으로 할인받은 게 모두 제외된다며 예상했던 위약금의 2배를 요구했다”며 “대관료뿐만 아니라 웨딩 영상, 메이크업, 드레스 대여 등 각종 위약금만 산더미”라고 했다. 그는 “이럴 거면 결혼을 굳이 해야 하냐는 회의감까지 든다”고 했다.
예식장 업체들은 ‘손실 보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예식장을 운영하는 연모(61)씨는 “예식장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 접수된 예약들로 운영되는데,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결혼식을 당장 한 달 앞두고 취소해달라면 우리도 위약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며 “거리 두기 정책이 수시로 바뀌어 예식장 업체들도 대다수가 임대 보증금까지 다 소진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예식장 관계자는 “이미 예약된 예식들이 30% 넘게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예비부부들은 정부에 결혼식장 입장 인원 확대, 백신 인센티브 적용 등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향후 예방 접종 진행 상황을 고려해 상황이 보다 안정되면 추가 방역 완화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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