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

- 2021. 9. 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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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된 지 1년 반이 되었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역병의 시대를 뜻하지 않게 직접 겪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역병 앞에 선 인간존재의 연약함, 혼돈과 부조리 속에서 그래도 살고 버텨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런 점은 중세기 페스트 역병에서도 그랬고,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오랑시에서도 그랬으며, 지금 코로나 시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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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된 지 1년 반이 되었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역병의 시대를 뜻하지 않게 직접 겪고 있다. 상점이 문을 닫아 거리에 인적이 드물고 거리두기로 사람과의 만남도 어려워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역병에 처한 인간의 삶을 보면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첨단기술사회가 와도 역병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전과 같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는 1722년에 쓴 ‘전염병 연대기’라는 작품을 통해 1665년 런던 대역병을 다루었다. 이 소설은 역병에 처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절망과 좌절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도시는 봉쇄되고, 무역이나 상업은 중지되고 사람들은 격리된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사망자 통계에 사람들은 놀라고 도시의 관청은 방역에 관한 행정명령을 남발한다.

‘전염병 연대기’에서는 템스강의 빈민촌에서 만났던 어느 가족의 참상을 묘사한다. 어느 사내가 강변에서 역병에 걸려 격리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저만치 떨어져 있다. 아내는 음식을 가져가면서 멀리 있는 남편을 보고 이름만 하염없이 부른다. 소설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아픔을 느꼈다고 서술했다.

현대로 와서 몇 달 전 뉴욕타임스는 양로원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안타깝게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기사로 실었다. 양로원에 있던 남편은 결국 코로나로 사망했고 이 사실을 모르는 노부인은 창밖에서 남편을 하염없이 불렀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역병 앞에 선 인간존재의 연약함, 혼돈과 부조리 속에서 그래도 살고 버텨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변하지 않는 점이 또 있다. 역병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당한다는 점이다. 런던 대역병 당시 도시의 경제활동이 멈추었기 때문에 노동자나 기술자, 상인들은 모두 생업을 잃었다. 귀족이나 부유층은 식량을 준비해 도시를 떠나 피신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식량을 구하러 역병 속의 도시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역병은 가난한 자들을 공격한다. 이런 점은 중세기 페스트 역병에서도 그랬고,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오랑시에서도 그랬으며, 지금 코로나 시대도 그렇다. ‘전염병 연대기’의 작가는 말한다. 런던 대역병이 가난한 자의 역병, 가난한 자의 비극이었다고.

정희모 연세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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