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 작가 "나도 D.P.였다.. 방관자였던 내 군 생활의 참회록"
"2000년대 군 복무서 실제 겪은 일.. 앞으론 실제 아닌 판타지 되길"
“디피는 누군가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폭력의 굴레가 이어지도록 방관한 저 자신을 참회하는 이야기입니다.”
넷플릭스 1위 드라마 ‘디피’의 각본가이자,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의 김보통 작가가 9일 서면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2000년대 초반 군번인 김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언론 보도 내용을 더해 대본을 썼다. 그는 “(현실과 다르게) 극화된 부분이 있다”는 군 반응에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본명과 나이가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공개를 사양했다.
그가 복무하던 부대도 폭언과 구타가 자행되던 곳이었다. ‘억울하면 신고해’라는 고참도 있었다.
“저는 디피(D.P.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라 맞지도 않았고, 부대와 사회를 오가며 고통받는 부대원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지만,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괜찮다 자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말년 병장이 돼 “더는 가혹행위가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아래 후임이 말했다.
“김 병장님은 맞지 않았으면서 그런 소리 할 자격이 없다. 내가 병장이 되고 나니 그들이 왜 때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맞을 만하니 때렸다’는 말이었다.
“충격이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그 과정을 방관한 것으로도 가담한 것이구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D.P는 아무나 될 수 없다. 그는 “가난한 것이 특기였다”고 했다. 군 시절 김 작가의 모습은 안준호(정해인 역)와 비슷했다.
“제 경우에는 선임 조장과 조원이 둘 다 체포실적이 적어 동시에 보직해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헌병대장이 부대원 중 가장 절박하게 탈영병을 쫓을 애를 뽑으라고 했다고 합니다(수사관한테 들은거라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저는 소득수준이 낮은 가정환경, 대학재학, 권투경험을 바탕으로 디피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적중했습니다. 실제로 터무니없는 활동비를 지급받은 데다가 당시 아버지가 암에 걸려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도 망하는 바람에 정말 하루라도 빨리 탈영병을 찾지않으면 끼니를 굶는 상태였기에 눈에 불을 켜고 활동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작품을 위해 고증을 많이 했다.
“극중 등장하는 가혹행위들은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언어폭력 중에는 제가 직접 들었던 것들이 녹여져 있기도 합니다. 분명히 군대는 예전보다 좋아지고 있고,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좋아지지 않은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극중에서도 황장수와 류이강 외에는 특별히 직접적 가해를 하는 병사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D.P 속 103사단의 일상은 평화로울 겁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 디피는 전면으로 드러내기 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연에 이입할 수 있도록 그들의 디테일을 살리는 쪽으로 신경썼습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님의 말처럼 착시현상인거겠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이야기가 과장된 것처럼 들리는 것처럼요.”
드라마와 웹툰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상병이었던 안준호가 이등병이 된 것이다.
“처음 전체 이야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할 때 저는 원작 웹툰을 그대로 가기 보다는 원작의 안준호가 왜 그렇게 진지한 인물이 되었나를 보여주기 위해 준호의 이등병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싶다고 제안했습니다. 감독님과 대표님이 동의해주셨고, 감독님은 앉아서 한호흡에 다 볼 수 있도록 6개 에피소드로 가져가는게 좋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하였고, 이에 맞게 전체 이야기의 초안을 만들어 보여드렸습니다. 그것을 두고 감독님이 극의 긴장감을 살릴 수 있도록 톤과 구성방향을 말씀하시면 또 그것에 맞게 초고를 작성하였습니다. 그것을 감독님이 수정하시면 제가 다시 수정하고 그걸 또 감독님이 수정하고 다시 제가 수정하고 그렇게 수차례 오간 뒤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감독님이 판단한 최종고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감독님이 머릿 속에 그리시는 그림이 있기에 그것에 관여하는 것은 제 역할이 아니라 판단해 그시점에서는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감독님이 해내셨죠.”
한호열 역시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각본 작업 중에 감독님과 제 디피 시절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사실 디피 활동을 하며 준호처럼 깊은 사색을 하거나 윤리적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로 우당탕탕 요절복통 모험활극에 가까웠는데, 그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으신 감독님이 한호열 캐릭터를 제안하셨고, 전체적으로 극의 활기를 줄 수 있는 캐릭터 같아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사를 쓰는 것은 제일 쉬웠습니다. 구교환 배우가 출연한 필모를 감상하니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구교환 배우가 떠들기 시작했고, 구교환 배우의 입을 빌어 제가 말한다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그 외 극중 인물은 작가의 창작이 반영되긴 했지만, 대부분 현존하는 인물이 모델이다.
“조현철 배우가 맡은 조석봉 역은 원작의 여러 인물을 섞어놨습니다. 거기에 감독님이 오타쿠라는 설정을 넣고 극 전체에 배치하여 캐릭터를 만드셨죠. 신승호 배우가 맡은 황장수는 제 군시절 부대원들을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몇몇 선임들이 합쳐진 괴물의 형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인물에 대한 증오만 가득해 굉장히 단면적으로만 표현했는데, 이 역시 감독님이 조석봉과의 접점을 만들어 내시며 복잡한 인물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고경표 배우가 맡은 박성우는 제 디피 선임의 모티브로 했습니다. 저역시도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진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저를 데리고 가라오케를 가거나 하진 않았는데, 돈많고 여자 좋아하고 노는 것에만 관심있던 사람이라 얄밉게 봤습니다. 김성균 배우가 맡은 박범구는 원작에서 제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입니다. 군생활 당시 군탈담당관이었던 중사분이 계신데, 탈영병만 잘 찾아오면 가타부타 말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사병 시절부터 제가 있던 헌병대에서 복무해 거진 20년을 같은 부대에만 있던터라 부대 내부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는 모습에 야속함을 느끼면서도, 간혹 차를 타고 둘만 있을 때면 은퇴 후 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는 둥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기도 해 친근하기도 했던 모습을 그려보려 했습니다.”
그가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원작 만화를 집필할 때도 탈영병을 체포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락물로서는 그쪽이 훨씬 대중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작품이 전하려는 메세지와는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죠. 그것보다는 탈영병을 잡는 디피조나, 잡힌 탈영병이나 둘 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습니다. 둘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징집된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인데 절대적인 악이나 선이 있을 수 없기 떄문입니다. 실제 제가 체포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도 그런 결이고요. 탈영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가해자요 피해자인거니까요.”
드라마가 공개된 후 그는 다양한 반응을 경험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가가 미필이냐?”라는 것이다.
“저는 군생활 내내 극단적인 가혹행위를 당해 도망친 사람들을 쫓거나, 가혹행위를 해 영창에 온 사람들을 지켜보거나, 수사과에서 매일 올라오는 극단적 사고사례를 보며 지냈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이와는 반대로 “작가님 혹시 우리 부대였습니까?”라는 반응도 많았다고 했다.
“그에 대한 제 모든 답은 ‘죄송하지만 아닙니다’였습니다. 그 답을 보내며 앞서의 반응과 대비 돼 굉장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시간을 비슷한 조직에서 보내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동질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니까요.”
그를 가장 아프게 한 반응은 사랑하는 사람을 군대에서 잃은 분들이 털어놓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다.
“구타를 당해 사망하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다 자살하거나, 영문을 모른 채 의문사로 처리 된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낸 분들이 그 사건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 조차도 금기한 채 살아오다 디피를 보고나서야 이런 비극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음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죄송하면서도 해야 할 이야기를 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9년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2013년 만화가로 전직했다.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아들이 대기업에 다니는 것이어서 몇년을 버텼다고 한다.
“아버지부터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갈 때는 가정 형편상 연관도 없는 야간대학 생물학과에 진학하셨죠. 그때의 한 때문인지 ‘없는 집 자식이 꿈을 가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그 꿈은 좌절될 것이니 차라리 바라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신거죠. 그저 평범하게 살기위해선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셨는데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비슷한 처지였다면 아버지와 같이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만화가로 전직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인생을 살고, 그 인생의 중간 중간 회사원이었다가, 수필가였다가, 드라마 작가로 살 뿐이죠. 딱히 각오나 계획도 없습니다. 되는 대로 삽니다. 살다보니 드라마 작가가 된 겁니다. 아마 아버지가 안돌아가셨으면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겁니다.”
웹툰을 한겨레에 연재하기 시작한 게 2014년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그는 페이스북에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군대 내 폭행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의 장문의 메시지를 첨부하고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들의 기사도 첨부했다. 군은 드라마가 전군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사건만 골라 일상적 일처럼 묘사했다거나, 현재는 병사들이 동기들만 생활관을 같이 쓰고 휴대전화를 쓸 수 있어 가혹행위 발생 시 곧바로 국방헬프콜 등에 신고하고 있어 드라마 수준의 가혹행위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런 비극이 벌어질 수 없다고 하지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디피는 사회고발, 현실적인,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가 아니라 밀리터리 판타지, 코미디, 말도안되는, SF로 회자되어야 합니다. 귀신이 등장하고 악령과 맞서싸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종교계를 공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듯, 디피를 보고 군에 책임을 묻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게 옛날 야만의 시절에 벌어진 말도 안되는 코미디가 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이제는 좋아졌다’는 말이 ‘그러니 이걸로 충분하다’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류는 그렇게 진보해 왔으니까요. 저는 타협이나 포기가 매우 쉽고 빠른 사람이라 딱히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일종의 공인된 거짓말쟁이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듣고싶어 하는 달콤한 거짓말을 하고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위해 드라마나 만화,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래서는 앞으로도 현실이 바뀌지 않게 되니까요. 이름만 알지 읽어본 적은 없는 일본의 소설가인 마루야마 겐지의 인터뷰를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 ‘작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닌, 여기 현실이 있으니 들여다 보라.고 끌어다 앉혀놓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렇게나 멋진 말을 하신 분이니 소설도 훌륭하겠다 싶지만 번번히 시도할 때마다 몇장을 못넘기는 걸 보면 저는 아무래도 얄팍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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