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아저씨를 빌려드립니다"

박영서 2021. 9. 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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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한번에 목돈을 주고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자동차, 매월 관리나 정비가 필요한 정수기나 비데, 새로운 기능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되는 첨단 가전용품 등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일정 비용을 내고 빌려쓰는 개념의 렌탈 서비스가 대세다.

이 편리한 렌탈업은 특히 일본에서 더욱 창의력을 발휘해 일반적 제품들을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까지 확대해가고 있다. 결혼식 하객, 세미나 참석자, 부모, 친구, 심지어 개까지... 일본의 렌탈세계에선 이 모든 것을 빌리는게 가능하다.

도쿄 신주쿠의 인력제공회사인 '패밀리 로맨스'에서는 결혼식이나 세미나에 대리 참석하거나 상견례 자리에서 부모를 대행하는 인력은 물론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한 '친구' 렌탈 서비스도 있다. 푸들이나 비글, 골든리트리버 등을 빌려주는 애완견 렌탈업, 대당 월 100엔(약 1100원)을 내면 LED 형광등을 대여해주고 유지보수 해주는 회사, 하루에 70엔으로 우산을 빌려 쓰는 렌탈 상품 등 원하는 건 모든지 빌려주는 일본의 렌탈업은 계속 진화중이다.

이 중 다소 민망할 수도 있는 이름의 이색적인 렌탈업체가 코로나19 시국에 인기를 끌며 매출이 증가하고 있어 잔잔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옷상 렌타루' 사이트가 그 주인공인데, 일본어로 아저씨를 '오지상'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아재처럼 흔히 줄여서 부를때는 '옷상'이라고 하니까, 이 사이트는 아저씨를 빌려주는 '아재 렌탈'인 것이다.

2013년 영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1시간에 평균 1000엔(약 1만1000원)의 돈을 받고 중년 아저씨를 빌려준다.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경력의 아재들이 사진과 함께 쇼핑몰의 상품처럼 게시돼 있다. '개그맨 출신 웃기는 아저씨', '불고기가 특기인 아저씨', '히로시마의 심리학 연구하는 아저씨', '계속 실패해 온 아저씨', '베이비 시터 아저씨', '게이오대를 졸업한 중매쟁이 아저씨' 등 매우 다양한 제목으로 개개인의 사진이 게재돼 있다. 클릭하면 자세한 이력과 렌탈 시 가능한 식사, 카페, 드라이브, 영화 감상, 상담 등 의뢰 종류 등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전직 임원, 예술가, 셰프, 과학자 등 전문 분야의 전·현직 종사자 약 70여명이 엄격한 심사와 면접을 통해 상품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객이 마음에 드는 아저씨를 선택하면 아저씨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안전하게 구매가 성사되고 약속된 시간에 아저씨들과 고객들이 직접 만나 서비스가 시작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화상 미팅이 늘어나 전년대비 매출이 20%이상 신장했다고 한다.

고객의 약 80%가 여성인 이 서비스를 만든 창업자 니시모토 타카노부 씨 역시 50대 중반의 아재로써 본인도 상품 매대에 등록하고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니시모토 대표는 패션 분야 전문가로서 활동중에 본인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실험적으로 시작했다가 그 반향이 좋아서 사업을 확대했다. 이 후 연간 400건이 넘는 서비스 체험담을 담은 '아저씨 대여일기' 단행본을 내고 그 동안의 '아재 대여' 경험을 바탕으로 쌓인 본인만의 아저씨 시각에서 고민 많은 여자들을 위한 연애 칼럼을 연재하는 등 아저씨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 선봉장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동안 '아저씨'는 "꾀죄죄하다" "꼰대다"라며 젊은 여성들에게 경원시되는 경향이었지만, 이런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친밀한 조언자'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아저씨'의 풍부한 인생경험을 담은 에세이나 악전고투하는 일상을 그린 만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일하는 여성이 늘고 있어 아저씨의 다양한 삶의 경험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김주혁이 2004년에 오지랖 넓은 아저씨로 열연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달려간다 홍반장'이 최근 '갯마을 차차차'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자마자 한국과 일본의 넷플릭스에서 이번주에 랭킹 2위까지 올라섰다. 이 또한 그 원인이 '아저씨' 이미지의 개선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같은 시대의 '아재'로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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