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창의성에 한계 두지 않아요" 음악의 범주를 부수다
데스플라와 협업해 플루트 버전 편곡
바로크부터 오페라·재즈 레퍼토리 섭렵
잊혀진 부분들 발굴하기 위해 노력 중
영화음악도 발레와 같은 정식 장르돼야
음악의 범주를 부수다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장담컨대, 데스플라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에마뉘엘 파위(1970~)가 그와 협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턱대고 설레었을 것이다. 데스플라의 영화음악을 들으면 플루트 음색이 날카롭게 각인된다. 아직 데스플라의 음악세계가 낯선 사람이라면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주제곡 '그리트의 테마'를 들어보길. 신비한 플루트 선율은 소녀의 요동치는 감정과 맞닿아있다.
데스플라는 파위를 위해 주옥같은 명곡을 추려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했다. 영화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원곡은 다양한 악기가 만들어가는 색채감이 특징이다.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되어도 원곡의 음향효과가 그대로 전해질까? 우려와는 다르게 보다 풍요롭고 근사하다. 이는 플루트와 너무나 친숙한 데스플라이기에, 뛰어난 기교를 지닌 파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수학·연극·역사 등 다분야를 공부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화음악'이란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들이 있다면?
-영화와 음악이 분리될 수 있을까? '영화음악'이라는 장르가 존재하기 전부터, 영화 안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이후 코른골트(1897~1957), 쇼스타코비치(1906~1975), 버나드 허먼(1911~1975), 존 윌리엄스(1932~)와 같은 작곡가들은 대규모 편성의 영화음악 악보를 남겼다.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으면 스릴러·드라마·코미디·사랑·전쟁 영화인지 단번에 알 수 있지 않나. 그것이 영화음악의 본질이다.
△작년에는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베토벤: 플루트를 위한 실내악 작품' 음반을 발매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목관 실내악은 낯선 편이다.
-베토벤 목관악기 작품들은 대부분 초기작이다. 그러나 고전시대 말기 모차르트 작품에 비해 속도나 표현이 목관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까다롭다. 젊은 베토벤은 하이든 같은 이전 세대 작곡가에게 배운 고전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더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과감하고 거칠기도 하다.
△이 음반에 담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은 직접 플루트 버전으로 편곡했다.
-우선 베토벤 소나타는 '바이올린 파트를 가진 피아노 소나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편곡할 때 베토벤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음반을 함께 발매했는데, 음악 장르가 상이하여 놀랍다. 음반에 대한 영감은 스스로 모색하는 편인가?
-두 음반의 출시일은 비슷하지만 작업 시기는 다르다. 2018년 말에 파리에서 '에어라인'을 첫 녹음했고, 이후 1년간 다양한 트랙을 채워 넣었다. 베토벤 음반은 2020년 6월에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리며 베를린에 거주하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만들었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 오페라, 재즈까지 그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에 대한 취향이 자연스레 변화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음악은?
-최근에는 잊힌 레퍼토리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은 살아있는 작곡가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업했다.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1961~)를 비롯해 외르크 비드만(1973~), 필립 마누리(1952~), 헤수스 토레스(1965~), 벤자민 아타히르(1989~), 필리프 에르상(1948~), 마티아스 핀처(1971~), 올가 뉴워스(1968~), 에릭 몽탈베티(1968~)와 호흡을 맞췄다. 다음 시즌에도 레라 아우어바흐(1973~), 도시오 호소카와(1955~), 에르키스벤 튀르(1959~)와 함께할 예정이다.◇플루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음반 '에어라인'에는 동명의 곡 '에어라인'이 실렸다. 2018년 파위에 의해 초연된 곡이다. '에어라인(Airlines)'은 중의적 표현을 지녔다. '비행기의 항로'와 '공기의 흐름'이라는 뜻. 데스플라가 영화 '아르고'를 작업할 때 공항 비행기를 보며 상상한 이미지를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파위는 "언젠가는 데스플라를 만날 거라 예상했다"고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데스플라가 원래 플루트 연주자였단 걸 알고 있었나?
-나와 데스플라는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프랑스 기반의 음악가이기에 조만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를린 필의 LA 투어에서 처음 그와 만났다. 그때 데스플라가 플루트를 연주했단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영화를 즐기는 편인지?
-정말 좋아한다. 영화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다. 1990년대는 퍼시 아들론의 '바그다드 카페'를 즐겨보았고, 최근에는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를 재밌게 봤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TV 드라마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색, 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당신을 위해 새롭게 편곡되었다. 편곡된 악보를 접하고 처음 느낀 점은?
-데스플라가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자신의 대표곡 중 일부를 재작업 했다. 곡의 본래 질감을 잃지 않고 편곡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을 테다. 나는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며 원곡과 가깝게 연주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음반에 담긴 곡 중 가장 애정 어린 작품을 꼽아준다면.
-꼭 선택해야 될까? 모든 곡이 다 좋은데! 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2악장을 주의 깊게 들으면 좋겠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데스플라는 어떠한 특징을 가진 작곡가인가?
-텍스처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둡다가 밝아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어떻게 해야 리듬이 조화로울지, 멜로디를 유지하는 방식을 안다. 특히 플루트 솔로 부분은 악기가 가진 음색의 빛나는 울림을 매혹적으로 표현해낸다. 대단한 작곡가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은 어땠나?
-데스플라가 직접 지휘했는데. 놀랍도록 유연한 오케스트라다. 최근에는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이 대거 합류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베를린 필에 오랫동안 몸담아왔다. 당신의 고향인 프랑스의 오케스트라와 호흡할 때는 특별한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고향'이란 감정을 느끼는 것은 특정 국가보다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설 때이다.◇영화음악, 이제 문명의 일부클래식 음악은 대중성을 보장받은 영화 콘텐츠를 통해 관객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 로열 앨버트홀은 2015년부터 유명 영화사와 제휴해 다양한 필름콘서트를 선보였다. 워너브러더스나 디즈니와 같은 영화 배급사들도 런던 심포니나 뉴욕 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화를 상영하며 음악을 라이브로 선사하는 공연물을 내놓고 있다. 영화의 인기가 고스란히 공연의 흥행으로 이어지니 공연기획자 입장에선 안정적인 자원인 셈이다. 베를린 필의 세대교체 시기에 입단한 파위에게 필름콘서트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영국과 미국의 주요 악단이 영화음악 녹음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를린 필은 어떤가?
-베를린 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음악을 하고 있었다. 영화음악도 발레나 오페라 음악처럼 우리의 정식 레퍼토리에 속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음악은 '21세기의 현대음악'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혹은 그냥 대중음악 범주에 두어야 할까?
-나는 음악을 '범주(categories)'로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범주는 창의성의 한계를 유발한다. 영화음악은 100년 이상 존재해왔으며, 이미 우리 문명의 음악, 문화의 일부이다.
△코로나 시대, 공연과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영화도 이제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에서 개봉하고 있다. 공연과 영화 플랫폼이 변경되면서, 연주자 입장에서 맞이한 새로운 고민이 궁금하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재개할 것이다. 온라인은 일시적인 대처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라이브 공연의 생동감은 다른 수준의 경험이다.
△이번 인터뷰는 데스플라도 참여한다. 그에게 한 마디 한다면?
-메르시, 데스플라! 당신의 영감에 함께했다는 건 큰 영광이었어. 브라보.
글=월간객석 장혜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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