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떠나자 아프간군은 오합지졸이었다 [이석수의 군사탐구]
편집자주
무기는 기술의 산물이다. 기술혁신은 무기혁신을 낳는다. 기술이 곧 전쟁양상을 결정한다는 미래주의 관점에서 전쟁과 무기, 그리고 한국국방의 생태계를 그려본다.
8월 15일 아프간의 가니 대통령이 허겁지겁 해외로 탈출한 직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다. 이어서 아프간 정부를 지원했던 미국이 8월 31일 철수를 완료함에 따라 탈레반은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지난 20년의 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 급속히 진행된 탈레반의 전국 장악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프간군이 궤멸된 것은 아프간 패망의 직접적 원인이다.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약 830억 달러를 투자해서 훈련과 무장을 시킨 아프간군이 어떻게 몇 개월 사이에 무너질 수 있었을까? 아프간군이 붕괴된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아프간군은 미국에 의해 설계되고 건설되었다. 부족, 인종, 종교 그리고 지역에 대한 충성심이 국가정체성보다 훨씬 중요한 아프간에서 국가차원의 통합된 효율적 군대를 건설한다는 것은 애초에 실패가 예견되는 무리한 목표였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지속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아프간군을 건설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미국식 아프간 육군을 건설하고 미국식 지상작전을 전개했다. 미국은 전술적인 보병기술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항공기가 전초기지에 대한 재보급, 의료지원, 정찰과 정보수집, 표적타격 등을 통해 지상작전을 지원했다. 미군은 근접 항공지원을 하고 아프간군은 지상전투를 수행하는 역할을 했다. 미군에 대한 아프간군의 의존이 더욱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아프간군이 스스로 책임지는 방위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취약한 정치·군사 리더십과 도덕성의 상실이 아프간군의 붕괴를 촉진했다. 대통령은 정통성 문제에 시달렸다. 부정선거, 부정부패, 정부의 무능, 외세 의존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 대통령과 국방부가 군에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실인사로 인해 부패하고 무능한 군 간부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군 간부들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리더십과 도덕성이 취약한 정부와 군 간부에 대한 병사들의 불신이 높았다.
탈레반이 지닌 상대적 강점 역시 아프간군의 급속한 와해를 촉진했다. 미군이나 아프간 정부와 비교했을 때, 탈레반은 아프간의 역사, 지형, 인종, 부족, 종교, 지역적 특성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탈레반은 우수한 심리전 및 선전전 능력도 보유했다. 더욱이 탈레반의 지휘부가 파키스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부를 공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탈레반은 예상보다 강한 응집력과 불굴의 복원력을 보여주었다.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아프간군이 갑자기 무너진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철군결정이다. 미국의 철군 발표는 정신적·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전쟁수행에도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2020년 2월 도하에서 탈레반과 미국은 2021년 5월 1일을 미군 철군시한으로 합의했다. 이후 미국은 평화를 준비하고 탈레반은 전쟁을 준비했다. 미군과 나토군의 근접 항공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재보급이 원활하지 않자 아프간군은 식량, 연료, 탄약 등의 부족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프간군 장비의 정비와 유지를 책임지는 대다수 군수계약업자도 함께 철수함에 따라 아프간군의 장비가 무력화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혼자 설 수 있는 ‘자율성’이 부족한 아프간군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군의 몰락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우리 군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외국군에 훈련과 장비를 제공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독자적 작전수립 및 수행능력이 부족하면 국가안보는 위기에 처하기 마련이다. 한미동맹이 굳건할 때, 자주국방력 강화에 매진하여 안보의 자율성을 증진시켜야 한다. 아프간 사례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군의 취약한 자율성은 패배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석수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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