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칼럼] 인생의 가을에 생각한다

한겨레 2021. 9. 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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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칼럼]뜻하지 않게 소원해져버린 사람을 불시에 떠올릴 때면, 그동안 20년,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등등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변명하고 있는 나를 본다. 뭔가를 이뤘다는 달성감이 아니라 오히려 거듭해온 실패, 과오, 죄라는 기억들만 가슴속에 쌓인다. 초로기에서 노년기로 이행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서경식|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것이 나의 숨길 수 없는 지금 심경이다.

일본에서는 지금 ‘자택 요양’이라는 미명 아래 입원하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사람들 수가 전국에서 13만5천여명이나 된다(9월1일 현재). 파멸적인 의료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9월3일 여당인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즉 사실상의 총리 퇴진 의사를 표명했다. 아베 신조 총리 뒤를 이어 1년간, 부조리한 전횡을 거듭하며 코로나19에 대해서도 갈지자 행보와 무대책으로 일관한 끝에 스가 정권은 퇴장하게 됐다. 하지만 다가온 총선거에서는 자민당 정권이 치명적인 패배를 면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만고만하게 ‘당의 얼굴’을 바꿔가며 현직 총리를 내치면서도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 유지에 집착하는 집권당의 자세는 마치 차례차례 변이를 거듭하면서 증식해 인간사회를 계속 위협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패러디 같다.

8월31일에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라는 큰 사건이 있었다. ‘9·11’로부터 꼭 20년이 지났다. 이 20년간 수십만의 인명과 함께 실로 많은 것을 잃었다. 이라크전쟁 발발로부터(에드워드 사이드가 세상을 떠난 지도) 18년이 흘렀다. 이라크라는 나라는 “대량파괴무기를 은닉하고 있다” “알카에다와 연결돼 있다”는,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혐의로 미국·영국 연합군을 비롯한 서방연합의 공격을 받아 사실상 소멸했다. 그 혼란 속에서 ‘이슬람국가’ 등의 무장조직이 대두했고, 시리아도 파괴돼 무수한 난민이 유출됐다. 이 무익하고 폭력적인 20년간의 세월 뒤에 이번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따른 대혼란으로 또다시 많은 인명이 손상될 것이다.

이 밖에도 벨라루스, 미얀마, 타이 등 세계 각지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평화적 운동에 대한 온갖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사 연구의 석학 하위징아의 명저 <중세의 가을>은 흑사병 대유행과 백년전쟁의 시대상을 그리면서 거기에서 역설적으로 탄생한 주옥같은 플랑드르파 예술을 논한 명저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애독자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의 ‘가을’(秋)이라는 일본어역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조락’(凋落) 내지 ‘쇠퇴’라는 의미다. 이것은 중세 말기 유럽 얘기지만,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력이 지금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대가 있었을까? 그것을 통감하게 만든 것은 ‘지구환경 파괴’라는 인류의 자살행위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현실이다. 올해도 일본은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여름인데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이 1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다. “벌써 가을이 왔네요”라는 말을 주민들은 불안스레 주고받는다.

‘현대’라는 시대는 두번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거대한 폭력과 함께했다. 우리는 모두 ‘폭력의 시대’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진보’와 ‘평화’라는 가치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려는 사상적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석권하는 국면을 맞아 그런 노력은 탁류에 휩쓸려 가고 정글의 논리(약육강식)가 개가를 올리고 있다. 우리는 폭력과 절연하지 못한 채 ‘가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문제투성이다.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남은 지면에 한국의 여러분에게 다소 사적인 보고를 하려 하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지금까지 몇번 언급했듯이 나는 올해 3월 말에 근무처에서 정년퇴직했다. 나이가 만 70이 됐다. 퇴직을 전후한 어수선한 시기가 이윽고 지나가고 분주했던 나날에서 분명 해방은 좀 됐으나 지금이 퇴직 전에 예상했던 평온한 일상은 아니다. 어쩐지 흉흉한 느낌이 진정되지 않는 심경이다. 물론 나 자신이 나이를 먹어 인생의 ‘가을’에 돌입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코로나 재난 때문에 행동이 제약당하는 스트레스가 예상외로 오래 이어지고 있는 것의 심리적 영향도 있을 것이고.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노라면 오랫동안 완전히 잊고 있던 장면이나 인물에 대한 기억이 당돌하게 되살아난다. 예컨대 이럴 때다. 대학 연구실에서 철수한 서책을 정리하다가 “언젠가 읽어봐야지” “이것도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에 입수해놓고 죽 손도 대지 못한 서책과 재회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서책들을 수납할 공간도 없고, 지금부터 그것들을 다시 공부할 시간도 체력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럴 때 내가 인생살이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적당히 둘러대며 살아온 것인가 하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꼭 같은 얘기를 모든 것,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다. 뜻하지 않게 소원해져버린 사람을 불시에 떠올릴 때면, 그동안 20년,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 사람은 이제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등등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변명하고 있는 나를 본다. 뭔가를 이뤘다는 달성감이 아니라 오히려 거듭해온 실패, 과오, 죄라는 기억들만 가슴속에 쌓인다. 초로기에서 노년기로 이행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인생을 마감한다”는 큰 과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 나를 격려해주는 것은 한국 동포와의 교류 기억이다. 1980년대 말에 옥중에 있던 형들이 출옥하고 1990년대엔 나도 조국인 한국을 종종 왕래하게 됐다. 예전에는 일본 땅에서 관념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었던 조국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게 됐다. 초기 저작인 <나의 서양미술순례>와 <소년의 눈물>이 번역 출판되고 예상외로 일본에서보다 더 많은 독자를 얻게 됐다. 나라는 인간에게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조국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한국 내의 동포들이 큰 희생을 치르며 ‘민주화’를 전진시킨 덕이다. 나는 그 투쟁의 과실을 누린 것이다.

2006년부터 2년간 연구휴가를 얻어 서울에서 생활한 경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 체류를 계기로, 여기에 하나하나 이름을 올릴 순 없지만, 많은 ‘선한 한국인’들을 알게 됐다. 재일동포 대다수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답답한 일본 사회의 외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민족분단이 이어지고 있는 것, 그리고 일본 사회가 역사수정주의를 강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아, 내가 이런 근본 문제의 극복에 이렇다 할 공헌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새삼 느끼고 있다. 한국은 반년 뒤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고귀한 희생으로 이어온 ‘민주화’의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든 지켜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지금 노골적인 탄압 아래 살아가고 있는 전세계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더없는 격려이기도 하다.

내 정년퇴직을 계기로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라는 문집 간행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게 과분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시대를 살았고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고 있는 한 재일동포를 기억의 한 자락에서나마 담아주시기를 희망하면서, 그 기획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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