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군의 시민통제를 위하여
박권일|사회비평가
“하, 차라리 군대가 바뀔 거라고 하십시오.”
“바뀔 수도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지.”
“저희 부대에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95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의 대사다. 대한민국 군대, 극단적 폭력과 부조리가 은폐와 방조로 대물림되는 곳. 6·25 때 수통은 황당하긴 해도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지금 이 시각에도 구성원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도중(9월7일 오후) 속보가 떴다. 해군 강감찬함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병사가 휴가 중이던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에 따르면, 피해자는 가혹행위를 신고했으나 2차 가해만 일어났고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해군뿐일까? 육군이건 공군이건 다 똑같다. 여군의 성폭력 피해와 은폐, 피해자 자살도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군 폭력 피해자는 도처에 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나의 큰삼촌은 군대에서 당한 폭행으로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됐다. 그는 제대 후 어떤 사회활동도 못한 채 고통받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전도유망했던 공학도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지만 군대의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첫째 이유는 사법기관이다. 구체적으로 평시 군사법원이다. 군사법원의 군검사와 군판사는 법무부가 아닌 국방부 소속이다. 군대 내부에서 수사와 재판이 모두 이뤄지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 조직적 2차 가해, 사건 축소 및 은폐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내부자가 내부자를 재판하는 격이니 범죄를 제대로 단죄할 수 있을 리 없다. 혹자는 군사법원의 존치 이유로 “분단국가 군대의 기강 확립”을 말하지만 구성원을 때리고 괴롭히고 강간하는 건 기강 확립이 아니라 범죄일 뿐이다.
물론 군사법원과 달리 형식상 독립된 한국의 사법부가 과연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고 있는가, 시민에게 그런 신뢰를 주고 있는가 묻는다면 선뜻 긍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의 공정성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확보하고 있는 반면, 군사법원은 형식이든 내용이든 공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평시 군사법원, 바로 이것이 한국군 창설 이후 70년간 군대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암흑의 핵심’이다.
군의 대응은 한결같다. 비판이 비등하면 납작 엎드려 실태조사를 벌이고 개혁안을 만드는 시늉을 하다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2014년 ‘윤 일병 사망 사건’ 당시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설치됐다. 군사법원 폐지가 논의됐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최근 군대 성폭력 사건 폭로가 잇따르자 또 위원회가 꾸려졌고 국회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등군사법원은 폐지되었으나 이번에도 평시 군사법원은 전면 폐지되지 못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얼마 전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마치 평시 군사법원 존치를 주장한 것처럼 왜곡해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군은 시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법원만이 아니라 헌법에도 문제가 있다. “유신헌법의 독소조항”이란 평가를 받아온 헌법 29조 2항이다.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이 조항은 군인과 경찰 등이 공무원의 불법, 부당한 행위로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기본권을 박탈한 악법이다.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은 자정이 어렵다. 군대는 그중에도 악성이다. 특히 대한민국 군대는 절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군대 자체를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군 인권 수준을 시대에 맞게 현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외부에서, 시민의 힘으로 강제되어야 한다.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척결 이후 군의 문민통제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의 현 상태는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시민통제’에 이르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군을 더 이상 인권 사각지대로 놓아둬선 안 된다. 시민의 적극적 개입만이 군대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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