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 '예측과 체험'展-유쾌한 감성 캐릭터로 '나'를 찾다

2021. 9. 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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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평창동 골목. 고즈넉한 주택과 자연 사이에 갤러리와 카페들이 숨어있어 쉬엄쉬엄 돌아보기 좋은 동네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여름, 북한산 근처를 걷다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전시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직은 낯선 이름, 에리카 김 작가의 전시를 리뷰해본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우선 톡톡 튀는 색감, 위트 있는 표정과 몸짓, 유쾌한 디테일로 무장된 설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키덜트 감성을 자극하는 밝고 유쾌한 작품들이 펼쳐내는 이번 전시는 개성 있는 브랜드 ‘Oopsy Oopsy’(웁시웁시)의 창업자이자 아티스트인 에리카 김이 주인공이다. 국제 아트페어 참가 및 뉴욕 전시를 통해 『월스트리트 인터내셔널』 매거진 등 현지 미디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그녀 작품의 주 캐릭터인 위티(Witty), 레이지(Lazee), 쿨리오(Coolio)의 탄생과 진화를 다루고 있다.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가진 각 캐릭터의 모습 속에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을 둘러보니 에리카 김은 아트디렉터와 크리에이터를 넘나드는 무한 영역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풍 또한 너무 엄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관람객들로 하여금 생각의 영역을 넓혀주는 동기 부여 역할도 해준다.

태양과 열정의 의미를 담은 위티의 플라스틱 금형 작품 뒤쪽에는 달걀 프라이 형상을 보여주고, TV, 도시를 표현하는 쿨리오 뒤에는 핫도그를, 달, 느긋함을 보여주는 레이지 뒤에 치즈를 표현한 것은 작가 취향이자 캐릭터에 생명을 넣어주는 행위로 기억할 만하다. 작가와 작품의 확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타고난 유전자를 통해 이미 결정된 기질을 가진 불안전한 존재이지만, 후천적인 요인인 교육, 사회화 등에 의해 달라지죠. 다소 부정적인 면들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특히 자연, 동식물, 휴머니즘을 통해 치유되고 변화하는 모습을 작품에 표현했습니다.”(에리카 김)

전시는 탄생과 성장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도록 과거-현재-미래의 플로우로 구성했다. 전시 공간 안에선 사운드, 빛, 설치 작품이 어우러져 편안하고 쉽게 그녀의 작품 세계로 스며들게 돕는다. 작가는 “작품과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도 만들었는데, 엄마의 뱃속, 태아의 모습으로 백색소음을 듣는 체험입니다. 그 당시가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그때를 상상하며 나는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잊고 있던 내면의 ‘나’ 자신의 모습에 집중해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유쾌하고 발랄해 보이는 작품의 첫인상과는 달리 작품의 근간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제 작품 속 캐릭터는 결국 나, 우리들의 모습이니까요”라는 작가, 에리카 김의 말처럼 전시 속 감성 캐릭터를 통해 현재의 나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게 된 전시, 그녀의 다음 스텝이 궁금해진다.

[글 김은정 사진 김연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6호 (21.09.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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