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상담사 실태조사 "유급휴가 줘놓고 집으로 노트북 보내"
하루 8시간 넘게 재택근무 시켜
관리자는 아예 병원서 업무처리
"회사, 비상대응 손놓고 문제 전가"
지난해 3월 발생한 코로나19 콜센터 집단감염 첫 사례였던 서울 구로구 소재 콜센터 상담사들이 대외적으로는 유급휴가를 받아놓고 실제로는 재택근무를 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콜센터 고위급 관리자는 코로나19에 확진돼 병원 치료를 받는 중에도 업무를 계속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과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9일 서울 중구 사무금융노조 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고 지난해 3월 발생한 구로 콜센터 상담사 집단감염에 관해 ‘에이스손해보험 코로나 19 집단감염 실태조사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석달에 걸쳐 조사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단은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전문의)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등으로 구성됐다. 구로 콜센터 상담사들은 외국계 기업 ‘에이스손해보험’(에이스손보)의 콜 응대 서비스를 맡았으나 ‘메타엠넷플랫폼’이라는 용역업체에 간접고용돼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원청 기업 에이스손보는 지난해 3월8일 콜센터 상담사 가운데 최초 확진자가 나온 뒤 전체 109명 민원팀(인바운드) 상담사 가운데 84명이 집단감염되자 자가격리자와 감염자에게 각각 닷새의 유급휴가를 부여하겠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가격리한 상담사뿐만 아니라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은 상담사들에게도 퇴원 당일 집으로 노트북을 보내 곧바로 업무에 착수하게 했다. 조사에 임한 상담사들은 “재택근무가 익숙지 않고 일이 밀려있어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고 조사단에 답했다.
특히 콜센터 관리노동자인 센터장과 매니저는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업무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에이스손보는 입원 당일 노트북을 병원으로 발송해 업무 처리를 지시했다고 한다. 안정을 취하라는 병원 요구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는 등의 역할을 대체할 이가 없어 일을 계속해야 했던 것으로 조사단은 파악했다.
애초에 구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집단감염은 에이스손보 및 메타엠넷플랫폼의 관리 책임과 무관치 않다. 조사단이 상담사의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서 등을 토대로 구로 콜센터 노동 환경을 추정해 보니 상담사들이 쓰는 책상의 간격이 1m 내외였고 마스크도 한 달에 한 번 지급받는 등 밀집된 공간에 필요한 방역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방역지침을 준수할 수 있으려면 책상 간격을 2m 이상 띄워야 하는데 당시에 이런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조사단은 파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감염으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서 남은 상담사들도 강도 높은 노동에 노출됐다. 에이스손보는 집단감염 사태에도 콜센터 업무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것을 결정했고 업무량도 줄이지 않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상담사들은 100명이 담당하던 업무를 10여명이 담당해야 해 새벽까지 야간노동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상담사들은 당시 상황을 묻는 조사단 질문에 “고객들이 너무 화가 나 있었고 받지 못한 콜들은 콜백(다시 걸어야 하는 전화)으로 남겨졌다”고 답했다. 당시 에이스손보는 상담사의 과로노동에 ‘보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실제로 이행하지 않았다. 도리어 재택근무 전산 연결 불량 등으로 상담사들이 대기하던 시간을 노동시간에서 제외해 그만큼의 임금을 회수해 갔다고 조사단은 파악했다.
구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계약서상 사용자는 메타엠넷플랫폼이었지만 정작 집단감염으로 업무가 마비되자 콜센터 운영에 발 벗고 나선 건 에이스손보였다. 사실상 에이스손보가 콜센터 서비스의 사용자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에이스손보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가는 상담사들에게 ‘회사 소속을 메타엠넷플랫폼이라고 하라’고 지시하며 원청 책임을 숨기려 했다고 상담사들이 조사단에 말했다.
에이스손보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실에 해명자료를 제출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재택근무에 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회사가 비상시 업무 대응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서 업무 소통과 업무 과중의 문제를 상담사들에게 사실상 전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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