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화가 구혜선, 솔비, 하정우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홍대 이작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한 미술가가 구혜선, 솔비, 하정우 등 그림 그리는 연예인들의 작품을 혹평하면서 미술계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홍대 이작가는 구혜선의 작품에 대해 '입시 학원의 미대 지망생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준', 솔비에 대해서는 ‘회화적 테크닉은 없는데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겉멋에 빠져 있다’, 하정우에 대해서도 '재능은 좀 있는 것 같지만 평가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연예인이 예술가를 겸업한다는 의미로 '아트테이너(Artainer)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근래 많은 연예인이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홍대 이작가의 비판은 그동안 아트테이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던 미술전공자와 전문작가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보통 예술가들이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학문적 커리큘럼을 거치며 수년간 훈련과 평가를 거쳐 작가로서 데뷔하는 데 비해, 연예인 작가들은 자신들의 인지도를 통해 너무 쉽게 미술계에 진입하고 작품을 고가로 판매한다고 생각했던 차에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주는 듯한 후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에도 셀럽 예술가들이 많다. 가수 밥 딜런의 스케치, 수채화 작품은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갤러리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 실베스타 스탤론, 루시 리우, 조니 뎁도 아트테이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홍대 이작가처럼 이런 연예인 화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한 미국의 미술평론가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FAI)의 교수이자 미술평론가 마크 반 프로옌은 셀럽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묻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조롱 섞인 답변을 했다. "나는 조니 뎁을 좋아하지만 그의 그림은 정말 최악이다... 그는 정말 그림이 뭔지 모르고 있다... 조니와 피어스는 테크닉이 부족하며, 실베스터의 그림은 재앙이다." 그는 루시 리우와 비고 모텐슨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트테이너에 대해 부정적이다. 외국도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한가 보다.
홍대 이작가와 미국 미술평론가가 말하듯이 정말 연예인 화가들의 그림은 최악일까? 이에, 구혜선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 예술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박한다. 또, 일각에서는 ‘홍대 이작가’라는 닉네임에서 볼 수 있듯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홍대 출신 작가의 권위의식이라며, 미대 나온 사람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구혜선의 말대로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앙리 루소와 장 미쉘 바스키아 역시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고갱과 고흐도 아마추어 화가 출신이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미술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도 남겼다. 정통 미술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혹은 테크닉만으로 창의적이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름값 없이 연예인 화가들이 그렇게 단번에 주목을 받고 작품이 고가로 팔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사실, 이들 연예인 화가보다 작품성이 높은 작가들은 차고 넘친다. 이름을 알릴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이다. 미술작가가 되려면 공모전 입상이나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데 갤러리 대관료에서 작품 디스플레이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작품이 판매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작품 가격도 연예인들의 그림보다 훨씬 낮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 인지도에 의해 작품이 비싸게(하정우는 캔버스 100호 사이즈 작품이 약 2,000만 원 선) 팔리니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는 것이다. 또, 미술전공자들 눈에 실력이 빤히 보이는데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인터뷰하고 다니며 대단한 아티스트인 양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아 씁쓸할 것이다.
흔히 그림은 그리는 이가 자유롭게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고 감상자도 각자 주관적으로 감상하면 된다고 한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방성이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미술작품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일까? 특히, 테크닉보다 콘셉트(concept) 혹은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는 미학적 쾌감을 위한 선과 형태, 색채, 질감, 구성과 같은 본연의 형식요소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충족하는 작품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간과할 수 없다. 기본기도 익히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개인적인 취미 미술이지 작가의 예술은 아니다.
연예인 화가들의 그림 중에는 드로잉이 엉성한 것도 있고, 강렬한 원색으로 덕지덕지 칠해 얼핏 ‘현대미술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색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도 눈에 띈다. 자신만의 독특한 콘셉트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떤 것은 19세기 인상주의,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행위예술에서 이것저것 어설프게 갖다 쓴 것 같고, 어떤 것은 피카소의 큐비즘, 그래피티 아티스트 바스키아, 앵포르멜 화가 장 뒤뷔페 등의 화풍을 피상적으로 짜깁기, 또는 모방한 듯한 인상을 준다.
진중권 씨 말처럼, 전문작가들이 마냥 ‘빌어먹을 허접한 조선시대 신분의식’에서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연예인들의 작가 활동을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흐나 바스키아는 정통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남의 것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했기 때문에 인정받은 것이다. 혹자는 셀럽의 작품이 고가로 팔리는 현상을 작품성 측면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가치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예술 허무주의다. 작품성 비판을 상업 논리로 덮어버리는 것은 난센스다.
최근에는 솔비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영국의 사치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여러 언론매체에서 보도했다. 사실은 사치의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전시회가 아니라 한국인이 세운 한 전시기획사가 사치를 유료로 대관해 솔비 작품을 전시 판매한 것이다. 언론에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솔비 소속사의 홍보용 보도 자료에만 의거해 마치 솔비가 사치에서 인정하는 전시회를 한 것처럼 대서특필한 것뿐이다. 연예인들의 작품 활동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미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솔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술계의 현재 상황은 분명 부조리한 측면이 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려면 상업 논리에 따르라고 주장하며 문제 제기 자체를 원천봉쇄한다면 할 말은 없다. 어차피 옥석은 가려질 것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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