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한 그날 "꿈 아니야, 어떡해".. 숨진 여중생의 7시간 문자

신정훈 기자 2021. 9.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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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충북 청주에서 성범죄 피해자로 조사를 받던 여중생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의 한 학생 유족이 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이 유족은 피의자 A씨의 범행 사실을 입증할 새로운 정황 증거를 제시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주 여중생 사건과 관련 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피해자 유족 측이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피의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신정훈 기자

◇범행 현장서 친구와 주고받은 7시간 문자… “결정적 증거”

피해 학생 B양의 유족은 기자회견에서 성범죄 피해 당일 현장에서 제3의 친구와 나눈 휴대폰 문자 메시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A4 용지로 수십장에 이르는 대화 내용에는 당시 B양이 느꼈을 고통과 공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B양은 지난해 1월 17일 친구인 C양의 집에 놀러 갔다가 새벽녘 C양의 계부에게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

당시 B양은 다른 친구에게 곧바로 “나 진짜 무서웠어. 꿈 아니야. 진짜 아프고. 너무 무서워”라며 “자는 척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문자를 보냈다. 또 “아프다, 소름 돋는다, 피의자가 친구(C양) 아빠다”라며 “C양 아빠 방이 신발장 옆이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다”고 친구에게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 아저씨(가해자) 왜 이러세요 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라며 “C양 아빠가 너무 무섭다”고 피의자를 직접 언급하며 공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B양은 당시 범행 장소에서 C양이 자고 있는 모습과 A씨의 범행 증거로 의심되는 휴지 같은 물체를 찍은 각 0.1초 가량의 짧은 영상 두 장면을 친구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유족 측 대리인 김석민 법무사는 “공개한 이 메시지 내용은 범행 당일 그 장소에서 7시간 동안 친구와 나눈 내용”이라며 “범행 현장과 내용이 담긴 이 대화가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A씨에 대한 유죄를 증명할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유족 “성범죄 저지른 A씨, 내 딸 또 집으로 불렀다”

피해 학생 B양의 아버지 Q(49)씨는 “A씨가 1월 17일 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도 두 차례나 더 내 딸을 자기 집으로 불렀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이날 B양이 피의자 A씨의 의붓딸인 친구 C양과 나눈 문자 내용도 공개했다. 대화 내용을 보면 B양은 성범죄 피해를 당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1월 22일 C양으로부터 “내일 아빠가 술 먹자고 함. 너 우리 집에서 잘 수 있으면”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B양은 거절의사를 전했다.

며칠이 지나 C양은 또 B양에게 “오늘 우리집에서 잘래?”라며 집으로 초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B양은 “아버지 계셔? 나 외박금지. 우리집에서만 자야지”라며 거절했다. 심지어 B양 부모가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던 2월 1일에도 집으로 오라고 했다.

B양은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당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친구에게 “무서워서 어떻게 감”이라며 “그날 너무 너무 너무 무서웠던 것 너도 알잖아. 나 진짜 그거 진짜 싫어”라고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9일 오전 기자회견 이후 피해학생 부모가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정훈 기자

◇피해 여학생 성범죄 피해당하고 피의자 딸인 친구 걱정

이날 공개된 메시지에서는 B양이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제3의 친구에게 “(피의자의 딸이면서 자신의 친구인) C양이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라며 걱정하고 묻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난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듯한 대화를 나눴다.

B양의 부모 Q씨는 “딸아이가 피해자이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고통스러워 했을지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1월 1일 제 생일에 ‘아빠가 제일 멋지고 효도한다’고 했는데...”라고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유족 측은 모 방송을 통해 공개된 C양의 유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C양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피의자인 A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는데, 직접 작성한 유서라고 보기 어렵다”며 “심지어 이는 법원에 제출하는 탄원서의 형태로 보이며 누군가에 의해 원치 않은 유서를 작성한 것이라면 이 또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일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다면 친족 성폭행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분리하지 못한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으니 관련법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개정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측 대리인 김석민 법무사는 “피해 학생은 성범죄에 대한 충격을 잊고 살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며 “하지만 더딘 수사와 친구 C양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피해 학생과 유가족의 원한이 풀릴 수 있도록 철저한 수사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유족측은 온라인을 통해 ‘오창 여중생 재판 및 입법 100만 탄원서’ 참여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친구 사이였던 여중생 2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현장에는 친구와 시민들이 추모하는 꽃과 작은 편지를 남겨두었다. /독자 제공

B양은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해 경찰조사가 진행되던 지난 5월 12일 친구 C양과 함께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해자는 C양의 계부 A씨로 지목됐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C양 또한 계부 A씨로부터 성폭행과 학대를 당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여전히 성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A씨에 대한 2차 공판은 오는 15일 청주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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