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좌파 시민단체가 판사 뽑게 되나

기자 2021. 9. 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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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법관 임용의 경력 완화法 부결

김명수 대법 요구 與의원 반대

코드 판사 선발로 불똥 튈 우려

국회·정부·시민단체 참여 요구

정치적 존재에 맡기자는 주장

개혁 미명으로 司法 장악 속셈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법관으로 임용되던 방식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요즘은 일정 기간 재판연구원, 검사, 변호사 등으로 근무 경력을 갖춰야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다. 제도 초기에는 3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필요로 하던 것이 차차 5년, 7년으로 늘어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다. 좀 더 경륜을 갖춘 사람을 법관으로 임용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요구하니 지원자 수가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기간을 추산하면 대학 4년, 로스쿨 3년, 군대 2년(남성)에 법조 경력 10년을 더하면 19년이 소요된다. 중간에 시험에서 낙방하면 그 횟수만큼 연차가 늘어난다. 대체로 40대 초·중반이 판사 임용 후보군으로 포착된다. 법조인이 돼 이 연령대에 이르면 이미 현재의 직장에 만족하고, 주변의 신망도 얻고 있을 공산이 크다. 굳이 판사로 전직해서 새로 일을 배우는 모험을 꺼린다.

대법원은 이러한 현실적 이유에서 법관 임용에 필요한 경력을 줄여 달라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국회는 이 법률안을 부결시켰다. 그리고 논쟁은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 그 중심에는 법관 출신의 이탄희 의원이 있다. 법관 재직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던 그의 눈에는 현 김명수 대법원의 제안조차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현 대법원의 법관 선발 방식을 판사 순혈주의 및 법관 관료주의의 산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선발 과정에 필기시험을 없애고 법원이 아닌 국회, 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 사회 제(諸)세력이 연합해서 판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의 전제가 잘못됐다. 판사 순혈주의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또 모든 법관에게 다른 법조 경력을 요구하므로 더는 적절한 표현도 아니다. 관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관료이기 때문에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있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할 수 있다. 정치적 바람이 거센 우리 사회 풍토에서 사법 관료인 법관이 중심을 잡으면 사회 안정성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법 관료제가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 의원이 제시하는 법관 선발 방법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선발 주체가 모두 정치적인 존재들이다. 국회를 사법부의 구성에 관여하게 하면서 사법부 독립을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를 법관 선발의 주체로 하는 것이 왜 부적절한지는 정부를 ‘정권’으로, 지자체를 ‘지방정권’으로 바꿔 표현하면 바로 이해된다. 시민단체는 언뜻 시민의 대변자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민단체의 공정성을 검증할 방법이 없고, 가입에 제한이 없다. 현존 시민단체 중에서 정파성을 띠지 않는 경우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시민이라는 용어가 실체를 기만한다. 정권이 시민단체의 이름을 빌려 충복이 될 법관을 선발할 수도 있고, 시민단체 스스로 정권을 위해 복무할 판사를 선발할 수도 있다. 정파성을 가진 시민단체는 자신들과 코드가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법관을 선발할 수 있다. 그 법관들은, 이 정권에서는 정권의 전위대가 되고 저 정권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목소리를 키운 시민단체는 정권을 잃을 수는 있어도 사법부 권력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우려는 지금도 존재한다. 현 김명수 대법원 체제 출범 이후 추진한 것이 사법행정에 외부 인사를 대폭 참여시키는 일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법원조직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그리고 대안으로 대법원 규칙으로 ‘사법행정 자문회의’를 만들었다. 많은 외부 인사가 이 회의체에 들어가 법관 인사를 포함한 사법부의 독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법관 임용에 필요한 법조 경력 기간을 줄이려 하자, 이탄희 의원은 이참에 아예 이전에 무산됐던 법원조직법 개정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해서 정권이야 교체되든 말든 법관을 좌파 시민단체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심산이라는 의심이 있다. 의심이 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온갖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사법기관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 아래 두려고 한 것이 이 정권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다.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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