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추석의 신(新)풍속도, 제주 고유 풍습 '벌초(伐草)'도 거리두기
제주특별자치도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추석 연휴가 끝나는 22일 자정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관광객과 귀성객이 몰릴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결정인데요. 다만 최근 도내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와 소상공인들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고려해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방역수칙을 다소 완화시켰는데요. 이번 발표 중 눈에 띄는 점은 '벌초(伐草)'에 대한 거리두기 방침을 상세히 그리고 자세하게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벌초에 대한 방역수칙을 얼마나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지 잠시 살펴보면요.
먼저 벌초철 특별방역 대책은 오는 9월 20일까지 시행됩니다. 우선 문중 조상들의 묘를 벌초하는 '모둠벌초'는 참여 인원을 최대 8명까지 허용합니다. 공동묘지를 포함한 '가족벌초'는 시간에 관계없이 최대 4인까지 허용하며, 벌초 작업이 늦게 끝나는 상황을 고려해 오후 6시 이후에도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예방접종 완료 자라도 사적 모임 인원 기준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또한 벌초 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물과 무알코올 음료를 제외한 음식물 섭취는 전면 금지됩니다. 묘지 당 4명씩 나눠서 작업해야 하고, 가급적 시간과 날짜를 분산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벌초를 위해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최대 4인까지만 탑승해야 하며, 벌초가 끝난 뒤에는 식당 등에서 뒤풀이 행위도 금지시켰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벌초를 위해 타지에서 입도하는 재외도민에게는 벌초 목적의 고향 방문을 가급적 자제하도록 강력히 권고했고, 불가피하게 입도할 경우 입도 3일 전까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 후 입도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한시적 특별방역 기간 동안 '마음·잠시·나눔 벌초' 대도민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는데요. 음력 8월 초하루부터 도민들을 대상으로 재난안전문자 발송과 시내버스 및 대형 전광판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캠페인 내용은 '이번 벌초는 멀리서, 마음으로 해주세요'(마음 벌초), '이번 벌초는 잠시만, 벌초만 해주세요'(잠시 벌초), '이번 벌초는 사람도, 기간도 나눠서 해주세요'(나눔 벌초)입니다.
대단하죠! 벌초 한 가지 사항에 대해 이렇게 디테일한 방역수칙을 수립하고 도민 캠페인까지 전개하다니 말이죠.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인 만큼 벌초 한번 쉬거나 대행을 주면 될 것인데, 행정과 민간 모두 예의를 갖추면서도 예민하게 신경 쓰며 대응하는 걸까요?
'식게 안 한 건 몰라도, 소분 안 한 건 남이 안다'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몰라도 벌초를 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
'추석 전에 소분 안 하면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
(자손이 추석 전에 벌초를 하지 않으면, 조상이 명절날 차례 때 덤불을 쓴 채로 온다)
이맘때쯤 도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제주의 속담입니다.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벌초를 중요시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여기서 말하는 '소분(掃墳)'이란 조상 묘소에 가서 무덤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인데, 벌초와 비슷한 용어로 이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역사의 기록을 보면, 제주 지역에서 봉분 형태의 묘가 들어선 것은 조선 초기로 보입니다. 태종실록 13년(1413년), 세종실록 2년(1420년) 등의 기록에 따르면 '부친상을 당하자 묘소 곁에 여막을 지어 3년 상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분(벌초)에 대한 기록은 문종실록(1451)에 나오는데요. '제주의 자제로 서울에 올라와 머물던 제주인들은 소분을 명분으로 고향에 다녀올 수 있었다'는 대목입니다.
조선시대에 제주에 간다는 것은 목숨과도 맞바꿀 수도 있는 뱃길을 뚫고 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벌초 때문에 그 험한 길을 왔다니, 제주에서 '모둠벌초'가 어떠한 의미였는지 상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음력 8월 1일을 전후로 문중의 일가친척들이 모여 조상 묘를 찾아다니며, 벌초를 하는 것을 모둠벌초라 부릅니다. 모둠벌초 때는 타지역 친척들까지 모이게 되니,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까지도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모둠벌초를 한 뒤에는 직계 조상의 묘를 벌초하는 데 이를 '가족벌초'라 합니다.
도민들은 전통적으로 모둠벌초를 조상을 돌보는 효의 핵심이며, 혈연 중심의 '겐당'(친척)을 단합하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시 생각합니다. 독특한 문화만큼 벌초는 명절보다 중요한 의식으로 여겼는데요. 어느 정도였냐면 201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내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음력 8월 1일이 되면 '벌초 방학'을 시행했습니다. 2004년의 당시 벌초 방학을 시행한 학교는 총 166개교 가운데 93.2%였고, 2007년에는 178개교 중 60%에 해당하는 106개교가 벌초 방학을 실시했습니다.
어른들 역시 벌초 시즌이 되면, 문중의 벌초에 참석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제 주변 분들도 벌초 때문에 휴가를 내기도 하고, 또 당연히 휴가의 사유도 벌초 때문이라도 자신 있게 말하는 분위기입니다. 벌초가 있는 날이면 새벽 일찍부터 오름 몇 개를 넘나들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묘까지 찾아 벌초를 합니다. 하루 이틀 많게는 사흘 나흘이 걸리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숭고한 전통으로 내려온 제주의 벌초 문화도 코로나19의 거센 광풍 때문에 문중이 대규모로 모이는 예년 같은 모둠벌초는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벌초를 안 할 수는 없기에 제주 행정당국도 지역의 오랜 풍습을 고려해 벌초 시기에만 적용되는 한시적 방역대책을 마련하여 조상들에 대한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다행히 도민들 역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요일을 나누어 소규모로 벌초를 하거나, 지역 농협 등에서 진행하는 벌초 대행을 외뢰하기도 하고, 벌초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묘제'도 생략하고 있는데요. 코로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벌초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주만의 독특한 벌초 문화와 코로나 상황에 맞는 일상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요. 앞으로도 자주 소소한 일상의 나눔을 하도록 할게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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