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400조 시대 맞은 코스닥, '2부 리그' 오명 벗을 때다
2015년 11월, 증권 업계 최고 화두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향방이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나스닥과 코스닥시장을 놓고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시장의 현재 위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당시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온 본부가 나서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 수뇌부가 정책 당국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코스닥 상장의 이점을 알리며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나스닥도 코스닥도 아닌 유가증권시장을 택했지만, 그때 코스닥시장이 보여준 ‘패기’는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들은 대부분 코스닥 상장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중소·벤처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라는 본연의 기능이 무색하게, 코스닥은 요즘 ‘잘 나가는’ 벤처 기업들의 선택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다수 유니콘들의 선택지에는 미국 증시와 유가증권시장만이 있다. 올해 4월 코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이 1조원 넘는 기업에 대해 사전 평가를 생략하는 절차상의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큰 효과는 없다.
코스닥시장이 이른바 ‘대어(大魚)’들의 외면을 받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코스닥은 거래소 ‘2부리그’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2017년 카카오와 셀트리온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하고서, 아직도 이렇다 할 스타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인데, 시가총액이 18조원을 조금 넘어 유가증권시장 25위 수준에 그친다.
코스닥시장을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하기 전의 발판으로 여기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네이버·KT·엔씨소프트·아시아나항공·LG유플러스·기업은행 모두 한때는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주였지만, 지금은 모두 유가증권시장으로 이동한 상태다.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코스닥을 떠나는 것은 언제부턴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기업들은 대부분 주식 매매 수요를 받쳐줄 만한 큰 시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유가증권시장에 둥지를 튼다. 그러나 큰 시장을 원하는 기업들의 이전상장은 결국 코스닥시장의 위축이나 성장 정체를 낳고, 이는 또다시 규모 큰 기업들의 이탈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악순환은 지금까지 거듭해왔다.
코스닥의 2부리그 탈피는 코스닥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증시의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미국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공생하는 구조가 정립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각 시장은 성장성이 크고 유망한 기업의 상장을 유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세계 1위 거래소라는 이점을 무기로, 나스닥은 저렴한 수수료를 무기로 좋은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반면 우리 증시는 한국거래소의 독점을 통해 운영된다. 단일 거래소의 독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란에 일조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들이 비슷한 가치를 지닌 해외 기업들에 비해 저평가 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코스닥이 2부리그라는 한계를 벗어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낳고 경쟁력 있는 기업들의 해외 상장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방지할 수 있다.
올해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성한 쿠팡의 시가총액은 상장 직후 100조원이 넘었다. 현재는 65조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 증시 기준으로 4위에 해당되는 대형주다. 앞으로 더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쿠팡을 따라 미국행을 택한다면 우리 증시의 체력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올해로 시가총액 400조원 시대를 맞았다. 현재 시가총액은 445조원으로, 1996년 개장 당시 시가총액(7조6000억원)의 60배로 성장했다.
시가총액 400조원을 넘어 500조원을 바라보는 지금, 코스닥은 적극적으로 성장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유치전에서 나스닥과 유가증권시장에 맞서 경쟁했던 6년 전의 패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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