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건의 도발적인 유머에 접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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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가오갤’을 이끄는 제임스 건이 DC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잠시 외도를 즐겼다. B급 정서와 슬래셔 무비의 전복성을 무기로 못 말리는 빌런 히어로들을 부활시켰다. 피 튀기는 잔혹함 속에서 그만의 유쾌한 유머가 꽃핀다.
“우리가 케빈 베이컨 같아(We're just like Kevin Bacon).”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슈퍼 히어로 영화 중에서 가장 멋진 대사를 뽑으라고 한다면, 도저히 이 장면을 지나칠 수 없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의 중반쯤 피터 퀼(크리스 프랫)이 가모라(조 샐다나)에게 헤드폰을 씌워주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멜로 감성을 풋풋하게 뿜어내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그는 경직된 사람들에게 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위대한 영웅이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풋루즈’, 케빈 베이컨이다. 얼마 후 피터와 힘을 합쳐 로난의 무리에 맞선 가모라는 전투 중에 신바람이 나서 이 대사를 툭 내뱉는다.
가모라에게는 각성, 관객에게는 교감의 순간! 케빈 베이컨의 &풋루즈>(1984). 국내에는 <자유의 댄스>로 소개된 영화로, 1980년대를 뒤흔든 댄싱 스타의 이름을 듣고 극장에서 곧 전율이 일어났다(엉뚱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주제가 ‘footloose’만 들어도 온몸의 세포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 영화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단순히 떡밥이나 뿌리는 낚시성 대사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직접 증명한다는 점이다. 모두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 무법자 로난을 가로막는 피터는 그를 면전에서 무시하듯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잔다르 행성을 파괴하겠다는 ‘엄숙주의’ 악당은 순간 당황한다. 이것이야말로 ‘풋루즈 정신’의 계승이자 발현이었다. 히어로 영화 세계의 경직된 구조를 웃음과 춤을 통해 전복시킨다. 얼마나 멋진 장면인지 음미하고 싶다면 그 전에 개봉한 <어벤져스>(2012)를 슬쩍 떠올리면 된다. 조스 웨던 감독이 <어벤져스>를 처음 내놓았을 때, 히어로들이 모여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올 것 같은 문학적 대사를 읊으며 중세 기사도의 냄새를 솔솔 풍겼다. 하지만 ‘가오갤’ 신드롬을 일으킨 제임스 건 감독은 애초에 웨던처럼 지나친 무게감이나 소명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히어로들이 고상한 척하면서 마블 스튜디오의 운명을 녹색 귀염둥이(헐크)에게 무책임하게 맡겨두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루트의 희생(또 하나의 명대사 “우리는 그루트다 We are Groot!”와 함께)으로 생존한 ‘가오갤’ 4인방이 손에 손을 잡고 우정과 동료의식으로 환난을 극복하게 만든다.
많은 창작자들이 감성팔이 레트로(복고)나 메타 영화 식의 오마주를 아무렇게나 차용하지만, 케빈 베이컨과 풋루즈 정신을 이토록 창의적으로 복원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레트로를 ‘신박’하게 만드는 마술이었다. 모두가 잊어버린 것을 소환해 히어로 무비의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맥거핀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마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스크림>(1996)으로 얻은 성과와 비교할 만하다.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케빈 베이컨의 귀환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초기작 <슈퍼>(2010)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루저의 이야기로, 무기력한 주인공 프랭크(레인 윌슨)는 아내를 악당 자크에게 빼앗긴 후 직접 히어로가 된다. 주인공이 히어로로 태어나게 동기를 제공한 인물을 바로 케빈 베이컨이 연기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재키 브라운>(1997)에서 팸 그리어를 살려낸 것과 다르지 않다.
제임스 건의 영화는 삐딱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어딘가 밉지 않은 도발을 일으킨다. 그렇다! 그의 유머 스타일은 히어로 영화에선 상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의 영화적 상상력은 히어로 장르 안에 머물지 않고 경계를 무너트림으로써 독특하게 발휘된다. 슈퍼 히어로의 세계에 푹 빠진 감독과 달리, 그는 어린 시절 히어로 코믹스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히어로를 비꼬거나 풍자하기 전, 초짜 시절에 ‘B급 인디 영화사’ 트로마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의 <트로미오와 줄리엣>(1996) 각본에 참여했고, 발랄한 <스쿠비 두> 시리즈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2004) 등 각본을 썼다. 즉 자유분방한 유머와 내장이 적출되는 스플래터가 동시에 체화된 셈이다.
무엇보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악과 대사로 ‘티키타카’를 하는 유머가 그의 관심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오프닝부터 10cc의 명곡 ‘I'm Not in Love’를 들려준 것처럼, 영화 속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Awesome Mix)’을 통해 추억의 팝송으로 어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데뷔작 <슬리더>(2006)에서 소원해진 부부가 에어 서플라이의 달달한 노래 ‘Every Woman in the World’를 즐기는 것을 선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 살육이 벌어진다. 코미디 영화에서 입심을 자랑하는 캐릭터는 많지만, 그의 영화처럼 완고하거나 과도하게 열정적인 이들이 일으키는 충돌을 히어로 영화 안에서 유머의 원동력으로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임스 건의 영화는 끊임없이 충돌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정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특정인의 각성보다는 유별난 인물들이 서로 뭉쳐 성장하면서 강점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제임스 건에게 안성맞춤인 영화다.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무시하고 새롭게 리셋한 이 영화는 영악하게 마고 로비만 할리 퀸을 유지해 캐스팅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더불어 새로운 캐스팅으로 인류의 평등함을 넘어 동물권마저 주장할 수 있는 캐릭터 킹 샤크를 출연시킨다. 또한 <라따뚜이>(2007) 이후 쥐가 얼마나 위대한 동물인지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을 히어로의 성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주에서 온 괴수, 스타로와의 전투는 어둠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잭 스나이더의 DC 히어로들과 달리 함박웃음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축제 분위기다. 스크린을 피로 가득 채울 때 객석에서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오로지 제임스 건의 제약 없는 상상력 덕분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막무가내 악당들은 연대의식을 잃지 않음으로써 ‘빌런 히어로’로 거듭난다.
다소 뻔한 얘기지만 제임스 건의 히어로는 한 명이 아니라 ‘그들’이라는 데 힘이 있다. 그(녀)는 결코 불법자, 타자,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으로 홀로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한다. 일찍이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자신의 저서 <웃음>에서 “사실 웃음에는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함께 웃는 타인들과의 일치된 생각, 말하자면 일종의 공범의식 같은 것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웃음으로 피어난 공범의식, 이것이 제임스 건의 영화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그의 위대한 캐릭터들, 즉 가모라나 할리 퀸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면 얼마나 잡고 싶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가오갤’ 팬을 위한 에필로그. 제임스 건의 유머를 지탱하는 히든 카드가 있다. 바로 욘두 캐릭터로 사랑받는 배우 마이클 루커다. 영화광들에게는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1986)으로 친숙한 그는 <슬리더>에서 비대한 괴물로 변해 최후를 맞이했고, <슈퍼>에서 케빈 베이컨의 똘마니로 등장했다. 그리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오프닝에서 대단한 능력자처럼 폼을 잡지만 허망하게 죽는다. 2018년 코믹콘을 위해 루커가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욘두는 죽어서 ‘가오갤’ 3편에는 출연하지 못한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아직 세상일은 모른다!
EDITOR : 조진혁 | WORDS : 전종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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