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더호프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
월요일 아침 온 공동체 식구들이 잔디밭에 앉았습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동화책 ‘엘머의 모험’에서 나오는 엘머처럼 파란 줄무늬의 티셔츠를 입은 우스꽝스런 차림을 한 젊은 아빠들이 날개가 퍼득이는 아기 용을 끌고 나타나더니 곧 1학년이 될 아이들을 불러 아기 용이 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곳 초등학교 1학년의 입학식 날인 아인슐렁 (Einschulung)날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이 곳 아이들 역시 초등학교 입학식은 커다란 설레임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날입니다. 새학기가 다가오면 예비 1학년 아빠들은 바빠집니다. 보통 선생님들이 입학식을 준비해 치르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빠들이 입학식을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입학식 한달 전부터 아빠들이 모여 올해는 어떤 테마로 해야할지 아이디어를 짜고 테마에 맞는 무대도 만들고 의상도 준비해 마치 콩트를 하듯 입학식을 치룹니다. 하빈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는 아빠들이 다국적이어서 입학식에 각 나라에서 대표 사절이 온 걸로 주제로 했는데 제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오바마의 인사를 흉내 내자 모두들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
그동안 유치원에서 이날을 위해 열심히 배워온 예비 1학년 아이들이 슐튜테(Schultte)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슐튜테는 독일에서 초등학교 입학식날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미국의 교육제도가 K-12로 만 5세 유치원부터 12학년 (고3)으로 되어 있는 반면 독일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정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에 1학년 첫날은 독일의 모든 어린이와 가족의 삶에서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의 첫 걸음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들이 슐튜테라는 커다란 종이 고깔을 만들어 그 속에 선물을 넣어 입학식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슐튜테의 전통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어른들은 예비 초등학생들에게 학교에는 슐튜테 나무가 자라고 있고 열매가 자라 익어 따기에 충분히 크면 그 때가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갈 시간이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참고로 독일도 미국과 같이 열매가 한창 익어가는 9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이곳 메이플릿지 유치원 아이들이 언덕 위에 심어진 커다란 오동나무를 가리키며 저게 슐튜테 나무인데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슐튜테가 무럭무럭 자란다고 하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슐튜테 나무를 산타클로스처럼 둔갑시키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입학식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슐튜테에 과자를 넣었는데 슐튜테의 입구 부분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몰라 가난한 사람들은 과자 밑에 감자나 종이 뭉치를 깔아 슐튜테를 채웠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입학식 날 슐튜테를 학교에 있는 나무에 매달면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적힌 슐튜테를 부서뜨리지 않고 따야 했다고 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크레용과 연필, 작은 장난감, CD, 책, 심지어는 옷 등을 집어 넣기도 하고 부모가 만드는 대신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기도 합니다. 저희 공동체에도 독일의 전통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식날을 아인슐렁이라 부르며 아이들에게 슐튜테를 나누어 줍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입학식이 다가오면 하얀 도화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우보이, 인디언, 요정 등 멋진 그림을 그려 슐튜테를 만들어 그 속에 학용품과 과자, 사탕 등을 채웁니다. 저나 아내나 그림 솜씨가 없어 우리 아이들 슐튜테에는 저희 가족에 속해 있던 싱글 자매가 토마스 기차와 아기 사슴을 멋지게 그려 놓았습니다.
브루더호프 초등학교 입학식 전통은 아이들이 이 슐튜테를 받기 위해선 자신의 이름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만5세 유치원에서 1년 내내 이날을 위해 알파벳을 배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알파벳을 배우는 방법이 참 재미 있습니다. 아이들은 알파벳에 따른 많은 활동들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생이었을 때는 알파벳 B를 배우는 주에 제 아내가 아이들에게 풍선(Balloon)으로 나비(Butterfly)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F를 배우는 주에는 아빠(Father)들이 소방차(Fire truck) 를 몰고가 아이들을 태우고 공동체 한바퀴를 돌기도 하고 K 를 배우는 주에는 저희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한국 음식(Korean food)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학년이 된 아이들이 그 때 먹었던 한국 음식을 기억하며 아주 맛있었다고 이야기할 때면 역시 조기 교육(?)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1년동안 알파벳을 배우면서 유빈이네 유치원은 야심차게 알파벳 서커스를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배운 알파벳에 나오는 동물들을 초등학교 형아들과 함께 멋지게 만들어 밑에 바퀴를 달고 미니 트렉터 기차에 달아 멋지게 입장합니다. 유빈이 친구 아빠인 매튜가 멋진 서커스 가운을 입고 나무 장대에 올라 멋지게 오늘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동물들이 지나갔으니 배설물을 치우는 흉내도 내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먼저 광대복을 입은 아이들이 장애물을 넘고 매트에 구르는 등 멋진 쇼를 보여주자 다른 아이들이 원숭이 가면을 쓰고 깡통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춤을 멋지게 춥니다. 유빈이 친구 롤랜드가 피리를 불자 광주리에서 독사가 노래 소리에 맞쳐 올라와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감탄해 합니다. 유빈이가 도전하는 건 200파운드 역기를 들어 올리기입니다. 먼저 등치가 아주 좋은 청년 두명이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도하는데 끝내 실패하고 마네요. 그런데 유빈이가 역기에 손을 대자 아주 거뜬히 올라갑니다. 여기 저기서 우레와 같은 환호 소리가 끝이 없습니다. 사실 춤추는 독사도 피리에 투명한 줄을 달아 독사 인형에 연결해 피리가 움직이면 독사가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유빈이의 역기도 스티로폼을 색칠해 끼어 만든 거지만 아이들의 노력에 모두들 정말 깜짝 놀라는 척 환호하며 정말 즐겁게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아이들의 노력에 아빠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약간의 개인기를 보여줍니다. 시므온과 제가 나가 일자로 다리 찢기를 보여 주니 이번엔 진짜로 놀라운 환호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실 중학교 때 체조 선수로 뛴 적이 있어 아직까지 다리가 유연하게 쫙 벌려 주네요. 다음은 아빠들의 인간 피라미드 쌓기 입니다. 한층 한층 계단을 만들어 맨 위에 제가 올라가 손을 쫙 벌리니 여기 저기 즐거운 탄성이 넘칩니다.
이렇게 일년 내내 아이들이 재미있게 알파벳을 배운 후 드디어 고대하던 입학식 아인슐렁 날이 왔습니다. 유빈이가 입학할 때는 아빠들이 커다란 뮤직박스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뮤직박스는 알파벳을 똑바로 쓸 줄 알아야 작동하는 기계였는데 우스꽝한 차림을 한 무식한 척 하는 아빠들이 이렇게 저렇게 엉터리 알파벳을 쓰자 뮤직 박스는 꿈쩍도 않습니다. 이번에는 예비 1학년 아이들을 불러 도움을 청합니다. 한 명씩 칠판에 자기 이름을 써 내려가자 모두들 큰 소리로 환호하며 박수로 격려합니다. 이름을 쓴 아이들이 뮤직박스에 들어가자 기계에서 신나는 음악이 터지면서 가슴에 슐튜테를 안은 아이들이 기계 밖으로 미끄럼을 타며 내려 옵니다. 마지막으로 아빠들이 1학년 아이들을 모두 수레에 태우고 학교로 데리고 가고 그 뒤로 다른 학년의 아이들도 따라 들어가 새로운 반을 구경하고 공동체의 모든 식구들이 그 뒤를 이어 새 학년이 되는 기쁨에 동참합니다.
아이들의 입학식을 지켜보며 제가 어릴 적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머니가 사주신 반짝거리는 새 가방에 학용품을 넣어 두고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일, 입학식 날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엄마 손을 붙잡고 설레는 맘으로 처음 국민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커다란 운동장에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 서 교장 선생님의 환영 인사를 받던 빛 바랜 추억의 한 장을 떠올리게 됩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p.s. 큰 아들 하빈이와 함께 메이플릿지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메이플릿지 공동체의 사는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WQeboxVQ0&ab_channel=Bruderhof
글 박성훈 형제/미국 부르더호프, 메이플릿지 공동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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