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경세제민]가계부채의 덫, 대출규제만으론 못 피해

신하영 2021. 9. 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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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고려대 16대 총장] 지난 2분기 가계부채가 180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년간 168조6000억원 늘어 증가액이 사상 최대다.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이 60%에 이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계부채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정책이 주택의 공급보다는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격을 오르게 만들었다. 정부출범 이후 25차례의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내놨으나 그때마다 오히려 가격상승의 단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평균 90%나 올랐다. 주택가격의 상승은 서울지역에 그치지 않고 풍선효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산했다. 주택가격이 급등하자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는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임대3법의 강행으로 전세가격까지 올라 주택담보대출은 더욱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가 통제가 어려운 속도로 불어났다. 정부가 시중은행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상한을 정하기도 했으나 효과가 없다.

부동산 시장 거품과 가계부채의 증가는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우리경제가 1990년대 들어서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아직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1980년대 들어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경제적으로 세계최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85년 엔화 절상과 달러화 절하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선진 5개국의 플라자 협약(Plaza Agreement)이후 일본경제는 서서히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경제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었다. 일본은 수출산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구조개혁과 경제혁신 대신 내수부양을 택해 금리를 인하하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다. 저금리로 풀린 자금이 산업자금으로 흐르는 대신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흘러 들어갔다. 상황이 악화하자 일본은 1989년 부동산 시장 거품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2.5%에서 6%로 인상했다. 부동산시장 거품이 꺼지고 금융시장이 불안에 휩싸이며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은행이 지난 달 기준금리를 15개월만에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가계대출의 증가를 막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그러나 우려가 크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가계대출을 정상화하려면 기본적으로 주택공급이 증가해야 한다. 정부는 주택공급 대책으로 공공주택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 반대로 차질을 빗는 곳이 많다. 새로운 투기대상을 제공해 가격상승을 부채질하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정책을 펴도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근본적으로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바꿔 시장논리에 따라 민간부문에서 주택공급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누적된 금융 불균형을 완화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금리인상의 첫발을 뗐다고 말해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시장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금리가 오르면 가계부채의 부도 위험을 높여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대책 없이 금리만 올리면 경제위기의 뇌관에 불을 붙이는 일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위원회는 집값을 잡겠다며 인위적인 대출축소에 나섰다. 금융회사에 가계대출 관리를 엄격하게 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부가 권고한 연간 가계대출증가율 상한선인 5~6%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NH농협은행이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하고 다른 은행들도 연간 목표치 안에서 가계대출을 관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앞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감소하지 않으면 한도축소 등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전망이다. 주택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나 잔금을 대출받지 못해 계약금까지 잃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어 주거가 불안한 경우가 발생하는 등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앞으로 대출절벽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리 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서둘러 오히려 가계부채가 더 증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대출축소 조치가 반대로 부동산시장 불안과 가계부채의 부도위험을 증폭하는 양상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엇갈리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604조4000억원 규모의 역대 최대 규모의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 국가채무가 1068조3000억원에 달해 국민 1인당 206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는 시중의 유동성을 증가시켜 부동산 시장 거품과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하는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통화정책이 냉탕정책이라면 재정정책은 온탕정책의 성격을 띠어 경제 불안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내년도 정부예산에서 일자리와 복지관련 예산이 216조7000억원으로 35.9%에 달한다. 실패로 판명이 난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를 유지하며 복지성 지출을 대규모로 늘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예산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내년에 예상되는 국가부채는 총 1068조3000억원으로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50%를 넘는다. 국가부채가 계속 증가할 경우 경제 불안이 확산한다.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유출하면 경제는 부도위험의 덫에 걸린다.

경제가 과잉 유동성과 가계부채의 함정에 빠져 실로 위험한 상태다. 당연히 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충격적으로 금리인상과 대출억제 정책을 펴면 시장은 곧바로 역행해 경제위험을 높인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기존의 부동산 시장 안정정책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같은 방식의 정책을 반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모순을 안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시장논리에 따라 주택공급이 늘어나도록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동시에 산업과 기업의 발전을 서둘러 투기로 흐르는 자금을 생산과 투자로 흐르게 해야 한다. 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대출을 억제하는 것이 수순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됨에 따라 재정정책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조건 돈을 풀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지출해야 한다. 재정정책이 정치적 성격을 벗어나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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