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헛지서리
[경향신문]
“당신의 상처를 진주로 만들라. 눈물이 많은 이여. 진주로 가득한 가슴이여.” 중세음악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 수녀의 노래. 옛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의 세월을 살았던가.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서 하난 할림새요 시누 하난 뾰족새요 시아재비 뾰중새요 남편이라 미련새요 자식들은 우는 새요 나 하나는 썩는 샐세.” 며느리의 시집살이 노래는 쥐며느리도 외우던 노래.
진주조개잡이 대신 꼬막을 파서 너구리처럼 웅크리고 들어온 초가집. 보리쌀을 물 불려 밥을 짓고, 새벽 일찍 보성장, 다음은 장흥 해남. 뻘밭을 걸어댕겼으니 신작로 걷는 일은 일도 아니었지. “요샌 뭐 하고 지내세요?” 물으면 “보믄 몰러? 헛지서리하재”라는 말이 퉁명스럽게 나온다. 헛짓거리를 이 동네에선 ‘헛지서리’라고 하는데, 해봐도 그닥 ‘션찮은 일’, 시원찮은 일. 헛짓이라 여기는 농사며 갯일이며 손해 안 봐야 그나마 천운을 입는 격.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밤낮없이 고생하는 사업가인 ‘도둑’이 들어도 가져갈 거라곤 마늘쪼가리밖에 없는 벽촌. 그래도 하늘이 아끼시어 마을을 오가는 군내버스를 타면 모두 신내림을 받게 돼. 하느님이 차에서 내리면 ‘신 내림’. 따로 교회나 절에 나가는 ‘헛지서리’ 할 필요조차 없어라. 아무 데서나 신내림.
도둑은 없나 마을을 한 바퀴 순찰하고 돌아와 밥을 안쳤어. 밥냄새도 좋고 책냄새도 좋아라. 엄마가 일어나 노래하면 아빠가 책을 보는 곳은 집이 아니라 노래방. 빌보드 차트에 오를 일 없는, 시집살이 노래라도 부르던 읍내 노래방들이 코로나로 다들 문 닫았다. 배롱나무 꽃그늘 달려갔다 돌아와 보니 곧 추석이라네. “무덤이고 벌초가 다 헛지서리다. 바다에 그냥 뿌려라.” 말씀을 거역하고 선산에 모셨는데, 길이 멀고 벌초도 간단치 않아. 풀벌레가 서럽게 노래한다. 무덤가 노래방.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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